물이 필요한 가나, 포도주가 필요한 결혼식, 주님이 필요한 인생에 부활과 회복을 주심 (요 2:1-12)

히브리어로 '되다'와 '이다 (혹은 있다)'는 같은 말이지만, 헬라어로는 다른데, 흥미로운 것은 1절에 '결혼(식)이 있었다'가 아니라 '결혼이 되었다 egeneto'로 되어있다. 이것이 헬라식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요한의 기록은 매우 상징적이며 함축적이기 때문에 결혼식이 되었다는 표현은 이 날 혹은 이 때가 의미있는 시각임을 밝힌다. 단지 결혼식이 있던 것이 아닌, 바로 그 때가 '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그 시각이 아직 임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4절에 말씀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표적을 보이셨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11절). '때가 오다'라는 말은 '카이로스가 오다'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시각이 임하다'로 되어 있다. 즉 주님의 어떤 시각이 아직 임하지 않은 것인데, 주님의 사역에는 그 때가 있지만 여기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 '때'에 대한 언급이라기 보다는 무엇인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며 아마도 부활을 암시하는 듯 하다.

앞서 1장에는 '그 다음 날' 혹은 '그 이튿날' 이라는 말이 세번이나 나오는데 (29, 35, 43절), 이 'epaurion'는 문자적으로 모두 '내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첫날 후 다음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이면 4일째가 되지만 1절은 '그 셋째 날'이라고 시작한다. 여러 주석은 43절의 '그 이튿날'로부터 세번째 날이라고 해석하지만 꼭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단지 '며칠 후' 정도로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은 굳이 '셋째'라는 말을 쓰는데, 1장에서는 '창조'를 말하고 그 다음 다음 다음 날은 넷째 날이 되지만 '셋째'로 말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혹은 회복의) 셋째 날은 물로 덮혔던 지구에서 뭍이 드러나는 즉 부활을 의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아직 죽으시지 않으셨고 따라서 부활의 때가 임하지 않았으며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지 않고는 참된 영광은 아직 이르며 더우기 인생에 온전한 생명을 주시기 이전이 되기 때문이다.

갈릴리 가나에 예수님과 그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까지 모두 있었는데 원래 그들이 가나에 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2절). 아마도 가나에 있었던 이유가 앞서 1장 나다나엘이 가나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는데 (요 21:2), 주님의 첫번째 표적이 이 가나에서 나타난다. '가나'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나' 혹은 '카네'에서 온 말이며 그 뜻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계곡이었다가 비가 오면 시내가 흐르는 곳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비가 오면 생명의 물이 흐르지만 비가 그치면 광야같이 변하는 곳으로 마치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래서) 포도주가 모자르게 된다. 아마도 연회에 사람들을 너무 많이 초청해서 발생한 일이 아닐까 하는데, 예수의 어머니 즉 마리아는 주님께“포도주를 (그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자 주님은 "나와 그대에게 무엇입니까, 부인이여? 나의 그 시각이 아직 오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답하신다. 이것을 보아도 이 결혼식이 주님과 제자들과 마리아와는 별 상관없는 결혼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일 가까운 친지의 결혼식이었다면 제자들에게 명하셔서라도 기꺼이 포도주를 구하려 하셨을텐데, 주님은 차갑게 답하신다. 개역 개정은 여기 '여자여'로 번역했는데, 문자 그대로 '여자' 혹은 '아내'를 의미하지만, 부를 때는 '부인이여'의 뉘앙스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했음에도 마리아는 집사들에게“무엇이든 그가 그대들에게 말하든지 하시오.”라고 부탁하는데, 거기 정결을 위해 즉 유대인들이 손을 씻기 위해 물을 저장한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주님께서“그 항아리들을 물로 채우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손님들이 많아서 이미 물이 바닥난 상태였을 것이다. 집사들은 명을 따라 그것들을 물로 위에까지 채웠는데, 물을 길어 퍼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렸을 것 같다. 집사들이 이렇게 할 때 그들은 그들이 퍼나른 물이 포도주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주님께서“이제 퍼내시오 그리고 연회장에게 가져가고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연회장에게 가져갔다. 집사들에게는 그리 큰 믿음이 필요 없었는데 그냥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한 때가 항아리에 부을 때 였는지 아니면 연회장에게 가져가는 도중이었는지, 아니면 연회장이 받을 때 였는지 모르지만 연회장이 맛을 보자 훌륭한 포도주였다. 보통 포도주는 적색이지만, 이 물론 만든 포도주는 백포도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보고 그냥 내놓지 않고 먼저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적포도주도 맛은 볼 수 있었겠지만). 적색이든 백포도주이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나같이 메마른 곳에 물이 흐르는 때가 있듯, 포도주가 모자라게 된 결혼식에 주님은 훌륭한 포도주를 공급하셨다. 포도주는 삶에 활력소가 되는데,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과 활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11절은 원어로 '이것을 표적들의 시작으로 예수께서 갈릴리의 가나 안에서 하셨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그 안으로 믿었다' 정도가 되는데, 주님의 시각이 아직 되지 않았지만 '표적들 (복수)'의 시작이 있었고 이것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요한복음의 특이한 점은 '믿다'라는 말을 쓸 때 '안으로 eis'라는 말을 한다는 점인데, 그냥 '믿다'가 아니라 '안으로 믿다'라고 한다. 앞서 빌립과 나다나엘의 고백처럼 제자들은 주님을 이미 믿었지만, 이 표적을 통해 이제 '주님 안으로 믿'게 된다. 우리는 주님 안으로 믿어야 한다.

주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활력이 되시는 주님 안으로 믿고 더욱 들어가기, 들어오기 원합니다. 주 안에 거하게 하시고, 풍성한 기쁨과 활력으로 인해 생명이 넘쳐 흐르고 감사가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