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으로 믿으면 영생을 소유하고 있게 됨 (요 3:9-21)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그' 선생임에도 '위로부터 나는' 것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라고 주님께 물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다시금 '아멘 아멘'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증거를 당신들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신다. 여기에서 '나는' 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는' 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앞서 '증거하다' 혹은 '증언하다'라는 말이 침례자 요한과 주님에 대해 쓰였다. 즉 여기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제까지 증언해 온 침례자 요한과 주님 당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데, 따라서 주님은 침례자 요한이 분명 '엘리야'이며 '우리'로서 함께 같은 사역을 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들 즉 유대인들 특히 권력자들은 그 증거를 받지 않았다.

12절은 '땅의 것들을 내가 말했고 당신들이 믿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하늘의 것들을 말했다면 어떻게 믿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땅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여러 비유를 통해 하늘의 것들을 말씀하셨지만, 만일 하늘의 여러 사항들을 직접 말씀했다면 사람들은 결코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기술의 산물들 즉 셀폰이나 컴퓨터 등에 대해 몇 백년, 아니 몇 십년 전에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을 받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13절은 '그리고 아무도 하늘 안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늘 안에 있는 그 사람의 그 아들이 하늘 밖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라고 하는데, 과거 적어도 두명은 하늘로 들려 올라갔었다. 그런데 여기 '올라가다'라는 동사는 능동태 완료형이다. 즉 본인이 직접 올라갔다는 뜻으로 '들려 올려진' 에녹이나 엘리야는 제외된다. 하지만 주님은 올라갈 필요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인데, 동시에 주님은 '지금' 하늘 안에 계신 분이시다. 주님은 땅으로, 세상으로 성육신 하신 분이지만 주님이 오실 때 하늘도 함께 온다.

14절은 '모세가 광야 안에서 그 뱀을 들어 올린 것 같이 그렇게 그 사람의 그 아들도 반드시 들려 올려져야 합니다' 라고 하는데, 하늘에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 오신 분께서는 이 땅에서 과거 구약 광야 시대에 백성들이 죄를 짓고 불뱀에 물려 죽임을 당할 때 모세가 구리 뱀을 장대에 매달아 올렸던 것, 그리고 그 뱀을 쳐다본 사람은 나음을 받아 살아났던 것 처럼 '들려 올려져야' 한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오셨다. 그래서 15절은 '그럼으로 모든 이가 그 안에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 입니다' 라고 말씀한다.

성경의 핵심이라고 하는 16절은 '그렇게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가파오 하셨기에 그 독생하신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에 그 안으로 믿고 있는 모두가 멸망하지 않게, 다만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게 하기 위함 입니다'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세상 즉 사람들이 그를 떠났음에도 사랑하셨는데, 그래서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다. 보통 '주다'라는 동사에는 여격 (~에게)과 대격 (~을) 둘이 와야 하지만 여기에는 대격 즉 '독생자'만 존재한다. 과연 하나님은 독생자를 누구에게 주셨을까? 여격은 없지만 '세상을' 이라는 말에서 바로 이 '세상'이 그 대상임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던 않던 혹은 믿던 믿지 않던간에 모두에게 그 독생자를 주셨다. 하지만 '그 안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모두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 '소유하다'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즉 주님 안으로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5:24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는데 원어에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로 되어 있다. 우리는 죽을 때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는 즉시 영생을 취하며 소유하게 된다.

17절은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려 그 아들을 세상 안으로 보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러나) 그를 통해 세상이 구원되어지기 위함입니다' 라고 말씀하는데,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도 보내실 필요가 없다. 그냥 그대로 죄 가운데 죽고 썩어짐으로 심판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고 따라서 세상은 구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님은 오셨고, '그 안으로 믿고 있는 자는 심판을 받고 있지 않'으며 '믿고 있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독생의 아들의 이름 안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18절은 기록한다. 여기 계속해서 '안으로 eis'라는 말과 '믿다'가 함께 가는데, 단지 '~을 믿다'가 아니고 '~안에서 믿다'도 아닌, '~안으로 믿다' 라는, 특히 '믿고 있다' 즉 현재 진행형으로 나온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수긍이나 지적인 이해만이 아니라 그 분으로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안으로'의 믿음이 현재가 되어야 한다.

19절은 '심판'을 정의하시는데, 빛이 세상 안으로 왔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빛 보다는 그 어둠을 아가파오 했'다는 것이다. 즉 무언가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빛 대신에 어둠을 사랑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그들의 일들이 악이어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망한 것이 심판이 아니라 그들의 일들 즉 행위들이 악 자체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말씀인데, 사실은 이것이 끔찍한 심판이다. 모든 끔찍한 일들이 이러한 것을 통해 나오기 때문인데, 결국 세상의 모든 악행들은 인류가 심판을 받았음을 증거해준다. 악행하는 자들은 따라서 빛을 미워하고 자신들의 악행들이 드러나지지 않도록 빛 앞에 오지 않는다 (20절).

21절은 '그런데 그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자는 그 빛 앞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행해졌음임이 명백해지기 위함입니다'라고 말씀한다. 니고데모는 과연 이 모든 말씀을 이해했을까? '위에서 남'을 시작으로 이제 21절은 '진리'를 말씀한다. 앞서 '은혜와 진리'를 언급했던 요한복음은 이제 '아가페'로 오신 주님 즉 은혜이신 주님을 더 자세히 말씀하고 다시 '진리'를 말한다. 사람들이 행하는 많은 이들은 선해보이는 것들을 포함하여 모두 헛것임을 말씀하는데, 거기에는 이해관계나 위선 혹은 이익 등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 즉 '참' 혹은 '실재'는 그 핵심을 행하는 것인데, 이는 '빛'과 관계가 있고 빛을 통해 참 혹은 실재임이 명백해 진다. '하나님 안에서 행해진 일들'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데, 우리는 삶의 여러가지 일들로 치이지만, 빛이신 주님 앞으로 나올 때 비로소 진리 즉 참된 것을 행할 수 있다.

주님, 주님 안으로 믿는 것이 영생을 소유함을 배웁니다. 영생을 소유하며 주님 앞에 나아와 참된 것을 살아내게 하소서. 주님은 빛이시고 참이시고 영생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