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유대교의 헤세드보다 탁월하신 참 은혜이신 주님 (요 5:1-9)

유대인들의 명절은 꽤나 빨리 돌아온다. 다시 1절은 명절이 왔고 따라서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소위 '양들의 문' 혹은 '양들이 모인' 혹은 '양들의 시장' 등을 의미하는 곳이 있는데, 아마도 제사를 위한 양들을 매매하기 위한 장소로 생각된다. 그 옆에 베데스다 라고 하는 연못이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베뜨 헤스다' 즉 '집'과 '헤세드 (은혜)'를 의미하는 이름의 연못이다. 아마도 제물로 쓰일 양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 옆에 있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흥미롭게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시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는 '수치' 혹은 '불명예'를 의미한다고 한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로 인한 수치와 관계 있고, 이러한 수치를 위해 양들은 제물로 바쳐져야 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수치스럽고 불명예로운 십자가를 지셨다.

이 연못에는 다섯 '주랑' 혹은 '행각' 즉 헬라 혹은 로마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기둥들 다섯이 서 있는데, 아마도 그 위에 덮개 혹은 지붕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아래 그늘에서 쉴 수 있게 만든 곳을 의미하는 듯 하다. 이 연못은 1888년에 Schick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깊이가 13 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산 높은 곳에 위치한 성전과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자연적으로 깊이 파인 연못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로, 하나님의 깊은 자비 혹은 은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다섯 주랑에 많은 병자들이 연못 물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휘저어 놓을 때 물에 먼저 닿은 이는 어떤 병에 묶여 왔든지 건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언급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인데,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음은 물론, 그 때가 언제일지도 모르게 무작정 기다려야 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유대교를 포함, 인간의 종교를 대변해 주는데, 분명 천사가 내려와서 기적은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그 수혜자는 한번에 단 한명 뿐이다. 요한은 '연약하다 astheneo' 라는 말을 2번 그리고 '연악함 astheneia'이라는 말을 1번 즉 모두 비슷한 말을 3번 쓰고 있는데, 이러한 단어가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에도 나온다. 즉 율법이나 육신이 모두 연약한다는 말로, 구약의 율법이나 육신에 속한 어떠한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 5절은 연약한 모든 죄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자신의 병약함 때문에 38년 동안 누워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명절임에도 그 누림 안에 동참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다. 이 사람을 주님께서 보시며 물으시는데, "건강하게 되기를 뜻하고 있는가?" 라고 질문하신다. 이 '뜻하다'는 '의지'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질문은 아마도 이미 38년을 누워있던 이에게 과연 의지라도 남아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유대교든 기독교든 세상 어느 종교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38년 이상을 누워있는 상태로 회복을 원할 의지도 잃게 될 수 있다.

주님의 질문에 병자는 '네, 낫기를 원합니다' 라는 대답 대신 '주여, 사람을 내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이 휘저어 졌을 때 나를 못 안으로 던져줄. 그런데 내가 가고 있는 안에 (즉 가는 중에), 다른 이가 내 앞에 내려갑니다 (원어 참조)'라고 답하며 신세를 한탄한다. 이 사람의 소망은 낫기를 원하는 것이었겠지만 그는 (도와줄 다른) '사람이 없음'을 즉 상황을 탓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대답에 '믿음이 없도다!' 라고 꾸짖지 않으시는데, 그것이 그의 실질적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도 기력을 잃고 우울증까지 걸린 이들이 적지 않은데, 주님을 만나는 대신 언제 동할지도 모르는 '연못'을 바라보며, 한줄기 소망도 이제는 흐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못을 바라보며 언제 동할지 마냥 기다리는 것 보다는 주님이 나에게 오심을 바라야 한다.  물론 주님은 은혜로 오신다.

주님께서 그에게 "일어나라 그대의 깔개를 드시오 그리고 걸어가고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일어나라'는 말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 하라는 명령이다. 언제 동할지 모르는 연못을 마냥 기다릴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지금 말씀하시고 주님의 은혜는 현재 준비되어 있으며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다. 주님의 말씀에 즉시 그 사람은 건강하게 되어 그의 깔개를 들어서 걷게 된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이 사람은 38년 만에 참된 안식을 맞았다. 그에게 있어 안식은 일어나 깔개를 들고 걷는 것이었다.

모든 복음서는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특히 요한에 의한 복음은 각 장 마다 주님을 계시한다. 앞서 두 가지 표적을 보이신 주님께서는 이번에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그 대상은 아무 힘이 없는 사람 즉 연약하여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없는 죄인에게 찾아가셔서 회복시키시는 분으로 계시된다.

주님, 주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시고 그 은혜는 과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나 유대교의 자비 혹은 어떤 신비스러운 일들로 인한 것보다 탁월하십니다. 주님께로 올 수 없던, 희망도 모두 사라진 죄인에게 찾아오셔서 회복하시고 참된 안식이 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한 은혜가 오늘 새롭게 충만되어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