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섬김을 통해 보는 참된 사역자들의 모습 (요 5:30-40)

5장의 반 이상은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떻게 보면 믿지 않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실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에게 계속 말씀하시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구원을 얻을까 (혹은 문자적으로 구원되어질까) 하기 위함이다.  구원은 성육신 하신 주님의 은혜 혹은 은혜이신 주님에 의해, 오직 주님 안으로 온전히 믿음을 통해 되어지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사람들이 당신 자신 안으로 믿도록 계속 증거하신다.  30절은 "나는 아무것도 내 자신으로 하고 있을 수 없소. 내가 듣고 있는대로 심판하고 있소. 그리고 나의 심판은 의로운 (것) 이오. 나의 뜻을 찾고 있지 않고, 대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찾고 있기) 때문이오." 라고 하는데, 주님은 그 뜻대로 하실 수도 있지만 항상 아버지와 함께 하시면서 그의 음성을 듣는대로 심판하고 계심을 말씀한다.  여기의 '심판 krino'라는 말은 '심판, 판단, 분별' 등을 의미하는 말로, 주님의 초림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고 구원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여기의 '심판'은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만사에 대해 분별하고 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인성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그 역시 사람으로서 모든 것에 대해 아버지께 묻고 그 들으시는 대로 분별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의 판단은 옳고 의로운 것이다.  주님은 항상 모든 것에 대해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다.

유대인들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고 요한은 진리에 대해 증언했는데 (33절), 그 빛은 주님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부터의 증언은 받고 있지 않으심을 말씀한다 (34절).  즉 사람의 인정이 필요없으신 것인데, 주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역자들에게 의아하게 들릴 수 있는데,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나 사람의 인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인정하심 즉 소명임을 말씀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이 확실한 사역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인정이나 영광을 구하지 않고 다만 맡겨진 일들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들의 섬김 역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께서 요한의 사역에 대해 유대인들이 그의 빛 안에서 잠심 동안이나마 즐거워 하려 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이 전통적인 유대교의 모습과는 다른 것 즉 침례를 행했지만, 그의 메시야 오심을 준비하는 사역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주님께서 메시야 이심에 대해서는 배격한다.  요한이 침례와 그의 증거를 통해 주님을 증언한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께서는 더 큰 증언을 소유하고 계신데,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에 대해 증언하고 있소'라고 말씀하신다 (36절).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의 부탁이었고 주님은 순종하셨고 그의 삶 전체가 증거의 삶이었다.  사여자들 역시 그들의 삶과 일들을 통해 그들의 권위와 정통성이 드러나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에 대해 친히 증언하셨던 것 처럼 사역자들의 섬김과 일들을 인정하신다 (37절).

37절 후반부는 원어로 '아무때든 당신들은 그 음성을 경청하지도 않았고, 그 모습을 주시하지도 않았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경청하다'와 '주시하다' 모두 능동태로 되어 있다.  주님과 유대인들의 차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는가 또 그 모습을 주시하려 했는가에 있다.  영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살과 뼈가 없는 영 (눅 24:39)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능동적인 경청함과 주시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은 38절에 의하면 '그가 보내신 이' 즉 주님을 믿음을 통해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또 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경들 (성경의 복수)'을 '열구 (열심히 구함)'하고 있는데 (39절), 그 구약 성경 책들 안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핵심은 바로 주님이심을 말씀한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할 때 우리가 만나는 분은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되신다.

주님, 주님을 섬긴하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지도 주님의 어떠하심을 주목하지도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삶 속에서 주님을 갈망하며 동행하기를 연습하기 원합니다.  이제 생명 주시는, 바람 같으신 영이신 주님을 취하기 원합니다.  그럼으로 살리는 사역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