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주님의 나눠주심에 함께 참여함 (요 6:1-15)
주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들은 그 자체로 '기적' 즉 자연법을 위배하는 일들인데, 오늘 소위 '오병이어'는 특별히 질량보존의 법칙이 위배되는 일이다. 주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것들에 적용되는 법을 만드신 분이시지만 거기에 매이지 않으시고 초월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상황적으로 장소는 갈릴리 디베랴 건너편이고 큰무리가 주님을 따랐으며 시기적으로는 또 다시 유월절이 가까웠었다 (4절). 5절은 '예수께서 눈들을 드셨다 그리고 보셨다 큰 무리가 그의 앞에 오고 있다. 빌립 앞에 말씀하신다. "어디로부터 (우리가) 빵들을 살까, 이들이 먹도록 ?" (원어참조)' 정도로 되어 있는데, 요한은 '어디로부터 pothen'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다른 복음서에서도 쓰인 말이지만 요한복음에 제일 많이 등장한다. 요한은 이 단어를 사용하면서 간접적으로 그 '어디'가 주님이심을 가리키고 있다. 6장 전체가 '먹는' 문제를 다루는데, 그것을 위해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먼저 기록하고 결국 그 '어디'가 주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이다.
주님의 질문에 대해 빌립은 '그들에게 불충분 합니다'로 답한다. 그에 비해 안드레는 "여기에 (사내) 아이가 있어서 보리(빵) 다섯 덩어리들과 (작은) 물고기 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이리 큰 (무리) 안으로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또 답한다. 하지만 결국 '이것으로 뭘 하겠습니까?' 즉 다시 불충분하다는 말이다.
11절은 원어로 '그래서 예수께서 (빵)덩어리들을 취하셨다 그리고 감사하셨다 기대앉은 이들에게 전해주셨다 (작은) 물고기로부터도 그렇게 (하셨다) 그들이 원했었던 만큼 주셨다' 정도가 된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는 그의 소유권을 따라 사내아기가 가져온 오병이어를 취하셨다. 아이가 먹으려고 가져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 양은 보잘것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셨'고 오천 명 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셨다. 이 '전해주다 diadidomi라는 말은 '통하여 dia'와 '주다 didomi'의 합성어로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다'라는 의미보다 '전달해 주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들린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혼자 일일이 주셨던 것은 아니고, 제자들을 통해 주신 것은 물론, 제자들에게 받은 사람들 역시 또한 서로 전달해 주는 그림이 그려진다. 즉 제자들과 사람들은 나눔의 통로(dia)로 쓰임 받았지만, 그 '주셨'던 분은 주님이셨고, '그들이 원했었던 만큼' 주셨다.
그 적은 빵 덩어리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언제 양이 늘었을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을 때 였을까? 아니면 제자들이 받아 사람들에게 주었을 때 였을까? 아니면 사람들 간에 또 서로 전해 줄 때 계속 양이 늘고 있었을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아마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실 때 양이 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요한은 특히 이 diadidomi라는 말을 쓰며 공관복음서와는 약간 다르게 이부분을 묘사한다. 적어도 요한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 표적의 결과만 누린 대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이 표적에 동참했다. 그래서 다시 12절은 '그들이 충족했을 때' 라고 기록하며 또한 "넘쳐난 조각들을 함께 모으시오 아무것도 멸하지 않도록."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록한다. 이 표적을 통해 그들은 충족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남은 부스러기들을 '함께 모았'는데, 주님의 말씀이 특이하게도 '아무것도 멸하지 않도록'이라고 하신다. 이 '멸하다'는 말은 요 3:16 '멸망하다'와 동일한 단어로. 이 표적을 체험한 이들이 충족했으며 또한 조각들을 함께 모으는 것은 한면으로 '구원'을 의미했다.
이러한 '구원'은 단지 멸망당함에서 건짐 받는 것 즉 지옥신세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13절에는 또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았다 그리고 보리 (빵) 다섯 덩어리들로부터 먹은 것에서 넘쳐난 조각들을 열두 광주리들에 채웠다' 라고 기록하는데, 많은 번역본들에서 '남은' 조각들 혹은 부스러기라고 했지만, 원어로는 perisseuo로 '넘치다, 넘쳐 흐르다, 과하다, 지나치다' 등을 말한다. 주님의 채우심은 충분함을 지나 과하게 넘친다. 그래서 열두 광주리나 채웠다. 이것은 앞으로도 더 먹을 수 있는 양인데,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남기지 않도록 정확한 양으로 주실 수도 있었지만, 이것이 바로 주님의 어떠하심이며 그 구원의 넘치심이다.
주님, 주의 행하심과 그 구원과 우리를 충족케 하시는 그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도 누리며 또한 건내어 전달하기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단지 받고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 안으로 함께 동참하며 그 놀라운 주님의 부으시는 능력을 체험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의 생명이 우리 안에 넘치도록 부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