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경외함으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음 (요 6:16-21)

기본적으로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은 죄를 지어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그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며 높이는 것이다.  가끔 예상하지 못한 주님의 어떠하심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 할 수 있다.

제자들은 이미 어두워진 때에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었다 (17절)'. 바다에 큰 바람이 불어 요동치고 있는 그 위급한 상황에 (18절)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바람 속에서 힘들게 5-6킬로미터 정도를 노 저어 갔을 때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 가까이 오고 계시는 것을 그들은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해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이다. 두려워지지들 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나이다'는 주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ego eimi로서 구약의 '여호와'와 같은 것이다. 구약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이나 백성에게 자주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적들이나 상황을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이 때 두 가지를 두려워했을 것인데, 하나는 풍랑이 심한 바다라는 상황과, 또 하나는 그런 상황에 어떤 누가 허공에 떠서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유령같은 존재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다. 그들은 전혀 예상도 이해도 하기 힘든,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한 하나님의 어떠하심 혹은 주님의 신성을 직접 목격한다.

주님의 말씀에 그제야 안도하면서 기꺼이 주님을 배 안으로 영접했는데, 그러자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있게) 되었다' 라고 기록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느 장소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심이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은 어디를 빨리 가거나 많은 번역본들 처럼 '이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을 모시며 함께 하는 것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가 어느 특정 지역을 향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물 위에 떠있던 것 처럼, 주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그 목적지에 '(있게) 된다'.

주님, 주님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주님과의 동행이 우리의 성화입니다. 주님이 모든 것 되십니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와의 동행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