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으로 믿는 우리가 영 안에서 누리는 오늘의 주님 (요 6:30-40)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나'라는 말씀처럼 30절은 다시 유대인들이 주님께 그 행하시는 표적을 구한다. 그들은 '볼 수 있는' 표적을 구하는데, 그런 표적이 있다면 믿겠다는 것이다. 요한은 '믿는다' 라는 동사를 쓸 때 제대로 된 믿음이면 거의 항상 '안으로 eis' 라는 전치사를 쓴다. 하지만 여기 유대인들이 말하는 믿음은 '안으로' 라는 말이 없다. 바로 앞절에 주님께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곧 그가 보내신 이 안으로 믿고 있는 것이오' 라고 말하셨음에도, 그들은 주님이 표적을 보이셔도 그 안으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먹는' 문제로 대화하기 때문에 그들은 과거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일을 언급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과거 모세의 인도 아래 그들이 만나는 먹었지만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그 빵'이 아니었음을 말씀하고,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 하늘 밖으로 (부터) 당신들에게 참된 빵을 주고 계시오' 라고 말씀하신다. 49절은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라고도 말씀하시는데, 즉 과거 그들의 조상이 경험했던 신비한 만나는 먹었어도 결국은 모두 죽었지만 '하나님의 그 빵은 하늘 밖으로 (부터) 내려오고 있고 세상에 생명을 주고 있'음을 알려 주신다.
그러자 그들은 바로 "주여, 이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라고 바로 구하는데, 25절에 그들은 주님께 '랍비여'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주여'라고 부른다. '빵' 문제 즉 현실이 달렸기에 '랍비'에서 '주'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이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언제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주님을 다시 배반할 수 있다. 이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빵'이 마치 과거 만나처럼 일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신비로운 것으로 여겼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그 생명의 그 빵이오" 라고 답하신다. 여기 역시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시는데, 과거 '여호와'라는 이름은 인생이 필요하고 원하는 모든 것이었는데, 즉 '여호와 라파(출 15:26), 여호와 닛시, 여호와 이레, 여호와 삼마,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목자)' 등등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 되셨던 것 처럼, 주님 또한 우리의 모든 것 되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에고 에이미'로 말씀하실 때 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하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시는데, 이어서 '나에게 오고 있는 이는 결코 주릴까 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내 안으로 믿고 있는 이는 언제든 결코 목말라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릴까'는 아오리스트 시제 가정법이고 '목말라'는 미래시제에 능동태로 되어 있다. 주님께 오고 있는 사람은 '배고플까 혹은 아닐까' 하는 문제에서 해방되는데, '아버지께서 내게 주고 계시는 모두가 나에게로 올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를 '결코 내칠까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37절). 또 주님 '안으로' 믿고 있는 이는 '앞으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인데, 지난 4장에도 이 '물' 혹은 '생수'에 대해서는 미래시제로 되어 있다. 당시 주님 '안으로' 믿고 있는 이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그 '물'이 허락되지 않았는데, 7장 39절에 의하면 그 물은 바로 아직은 오시지 않은 '성령'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 성령이 부어지심으로 주님 안으로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목마름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물질적 혹은 육신적인 목마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 외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그치게 하며 참된 것으로 우리를 채우심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또 과거 구약 사람들 처럼 주님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주님을 보았음에도, 주님 '안으로'가 아니라, 아예 믿기 조차 하지 않는다 (36절). 하지만 주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시다 (38절). 하늘로 부터 내려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분으로서 주님은 아버지가 주신 모든 이들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며, 마지막 날에 일으키실 것이다 (39-40절).
주님 앞에 더욱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 모든 필요, 모든 만족 되시는 주님을 더 누리기 원하며 주께 영광돌리기 원합니다. 주님 안으로 믿어서 주님의 모든 약속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