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할 때 듣고 들을 때 그 안으로 믿으며 믿을 때 레마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요 8:31-47)

요한은 '믿는다'라는 말 뒤에 '안으로 eis'라는 전치사를 두기 좋아하는데, 따라서 이 eis 없이 그냥 믿는다라고 말할 때는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31절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었다 해도 주님 '안으로' 믿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주님은 그들에게 "만일 그대들이 나의 말 안에 머문다면,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오" 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믿었지만 주님의 말 안에 머물지 않았던, 즉 주님 '안으로' 믿지 않았았고, 따라서 참으로 주님의 제자들은 아니었다.

32절은 '그리고'라고 시작하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외울 구절은 아니다. 앞 31절과 연결되어,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 때 참으로 주님의 제자들이 되며 그 참을 알게 될 것이다. 참 즉 진리 aletheia는 '참, 진짜, 진리, 진실, 실재, 현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그 참된 모습을 알게 되며, 그 현실 안에서 실재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참을 앎 혹은 그 진리 자체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함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이 '자유'가 무엇인지는 따라오는 33-34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씨가 우리 입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언제든 종노릇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대들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사실 아브라함 자손들은 과거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노릇 했었고 또 당시는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들이 그 사실을 잊었는지 아니면 그러한 일들은 과거로 치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아멘 아멘"으로 "그 죄를 (행)하고 있는 모두는 그 죄의 종이다 " 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이 '진리'도 영적인 문제이며, '자유' 역시 영적인 문제인데, '현실'에서도 물론 적용이 가능하며 민주주의의 기본 근간이 되지만, 주님께서는 바로 '그 죄'를 언급하신다. '죄들' 즉 복수의 '행위'들만을 말씀하시지 않고 '그 죄' 즉 단수인 죄의 근원 혹은 죄성을 말씀하시는데, 이 죄는 죄인들 안에서 조종하며 그들을 다스린다. 그래서 바울은 롬 7:15에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한탄하며 고백한 것이다.

'그 죄'는 '죄들'을 낳게 즉 행하게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죄를 (행)하고 있는 모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죄인'들은 그 자체가 '그 죄'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종'들이고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인 것이다 (35절, 44절). 35절은 다시 '그 종'을 말씀하는데, 단수로 되어 있다. 그 종은 '세대 안으로' 즉 영원히 '그 집 안에 머물고 있지 않'는데, '그 집'은 당연히 하나님의 집이다. 반대로 '그 아들은 세대 안으로 머물고 있'음을 말씀한다. 여기 '그 종'과 '그 아들' 각기 단수인 것은 '그 아들'은 물론 주님이시지만, '그 종' 즉 마귀 종족과 '그 아들' 종족 혹은 세대가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둘 중 한 종족에 속하는데, 옛사람과 새사람 (롬 6:6, 엡 2:15, 엡 4:22-24, 골 3:9-10) 혹은 첫 사람 아담'류'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 즉 신'류'이다 (고전 15:45).

사실 원래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어서 '인류'라는 말보다는 피조물 중에 '신류'에 가까웠다. 하지만 죄를 짓게 되어 죄의 권세 아래 즉 마귀 아래 있게 됨으로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즉 자유할 수 없는 존재로 하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으로서 아담류를 끝내시는 주님께서 사람을 자유케 하시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들이 된다 (36절).

주님께서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임을 인정하시지만 (37절) 성경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이삭의 씨라야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일 것을 말씀하시는데 (롬 9:7),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안에 주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주님을 죽이려 한 것이 된다. 그들은 주님을 율법에 따라 혹은 시기심으로 혹은 두려움으로 십자가에 잡아 죽이려 했지만, 동시에 이 '씨'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 사람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가 그들 안에 자리 잡지 않았기에 그 뿌려진 말씀의 씨는 헛되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의미하신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함께 봤던 것들을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그 아버지로'부터 함께 (그대들이) 들었던 것들을 하고 있다고 폭로하신다 (38절). 그들이 '들었던 것들'은 '거짓말들'이고 그러한 것들을 그들을 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의 그 아버지는 아브라함 입니다" 라고 답한다. 앞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임을 인정하셨지만 이제 '자녀'라는 말을 언급하시며 그들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씨'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은 개체라면 '자녀'는 그 씨로부터 아버지와 동일한 생명으로 태어난 생명체를 말한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일 즉 하나님을 믿는 (롬 4:3, 갈 3:6)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신 부전자전이라고,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로서 마귀의 일들을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에 대해 그들은 이상하게 "우리들은 음행 밖으로 (부터)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아버지를 (우리는)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윗이 시 51:5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것을 잊었다. 과연 다윗만 죄 악 중에 출생했을까..

사실 구약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단지 이사야 63:16과 64:8 정도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이사야가 그렇게 불렀던 것이고, 보통은 '신, 엘로힘'으로 불렀다.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찌보면 논리적일 수도 있지만 창조주의 생명을 소유하지 않고는 창조주를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이것이 유대인들과 주님의 차이인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거듭나지도 즉 '위로부터 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아직은 소유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는데, "만일 하나님이 그대들의 아버지셨었다면, (그대들은) 나를 아가페했을 것이오. 나는 하나님 밖으로 (부터) 왔소 그리고 여기에 있기 때문이오. 내 자신으로부터 오지 않았소 그러나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소' 라고 42절은 기록한다. 하나님로부터 그분과 함께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만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다면 주님을 부인하거나 배격할 수 없고 그 생명으로 당연히 주님을 아가페 사랑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셨던지 아니면 그들이 깨닫기 원하셨는지 주님께서는 43절에 "왜 일러줌을 통해 내 (말)을 그대들은 알지 못하고 있소? 나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오"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계속 일러주셨지만 (말하다 와는 다른 단어) 그들은 알지 못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영적인 귀가 열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결국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이고 따라서 그들은 마귀의 "욕망들을 하고 있기를 뜻하고 있'었다. '욕망, 에피뚜미아'이라는 단어는 '정욕'으로도 번역된 말이고, '뜻하다, 뗄로'라는 말 역시 매우 강한 말이다. 죄인들은 그 안에 매우 강한 욕망 혹은 정욕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들로 부터 '뜻'이 나오며 겉으로는 '선한 뜻' 같아 보여도 결국은 그 근원이 '태고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안에 서지 않았었던' 마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한다.

여기 사용된 '원래' 혹은 '태고 arche'라는 말은 요한 복음 1장 1절의 '태초'인데, 이것은 창세기의 창조 이전 일이다.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고 그 후 창조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태고부터 마귀가 살인자였음을 폭로하신다.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으로 기록되지만, 가인이 살인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이전 '살인'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바로 마귀였음을 주님께서 폭로하신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언제 살인을 했는지, 그가 죽인 것이 '사람'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생명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귀는 이미 가인 이전에 살인한 자이다. 그리고 '참 혹은 진리) 안에 그는 서지 않았었'는데, '그 안에 참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지만, 마귀는 그 안에 참 혹은 진리가 전혀 없다. 주님을 떠난 여러 종교는 인간 속에 참된 것이 있어서 깨닫기만 하면 열반에도 이르고 구원 비스무리한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것은 마귀가 하는 말들이다 (38절). 주님은 마귀에 대해 "언제든 (그가) 거짓을 이를 때 그 자기 밖으로 (부터) 말하고 있소.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그것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오" 라고 다시 폭로하시는데, 마귀는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거짓말인 이유는 주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 하시는 일들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임의대로 멋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주님 레마로 말씀하실 때 듣게 하소서. 들을 때 믿게 하소서. 믿을 때 순종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들임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