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명령을 이루신 주님 (요 12:37-50)
표적과 믿음에는 상관 혹은 인과관계가 없지 않다. 사실 표적은 믿음의 대상을 입증하는 필수 사항이지만, 그렇게도 많은 표적을 보았어도 유대인들은 '주님 안으로 믿지 않았었다 (37절). 그런데 이에 대해 요한은 "주님, 누가 우리의 보고를 믿었습니까? 그리고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나졌습니까?" 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채워지게 함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이미 기록된 말씀 때문에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설명하는데, 다시 40절에 "(그가) 그들의 눈들을 멀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 눈들에 (그들이) 보지 않도록 그리고 마음에 깨달아 돌이켜지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들을 (내가) 고칠 것이다." 라고, 또 41절에는 '이사야가 이것들을 말했다 (그가) 그의 영광을 보았고 그에 대해 발언했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한다.
요한에게 있어 이 이사야의 기록은 메시야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 원어에도 앞부분 동사는 모두 미완료시제이지만 마지막 두 동사는 완료로 되어 있다. 요한은 헬라어로 기록하며 이 40절 뒷부분을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가 아니라 '그리고 그들을 (내가, 1인칭 단수) 고칠 것이다'로 기록한다. not에 해당하는 단어 me가 앞에 단 한번 나오기 때문에 '보다, 깨닫다, 돌이키다' 라는 동사 모두가 가정법으로 되어 있어서 그들을 수식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kai로 시작하며 '고치다'는 가정형이 아닌 미래시제로 되어 있다. 요한은 그들이 이렇게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만유를 당신께로 이끄시며 고치실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듯 하다.
관리들 조차 많이들 주님 안으로 믿었지만 드러내고 고백하지는 못했는데, 출교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기록한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아가페했기 때문 (43절)'이라고 말하는데, 주님은 이러한 이들 조차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그들을 고치실 것이다!
44절부터 50절까지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데, 원어를 직역하면
(요 12:44) 그런데 예수께서 외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 안으로 믿고 있는 자는 내 안으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 안으로 (믿는 것이오),
(요 12:45) 그리고 나를 주목하고 있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주목하고 있소.
(요 12:46) 나는 빛으로서 세상 안으로 왔소. 내 안으로 믿는 모두가 어둠 안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오.
(요 12:47) 그리고 만일 누구든 내 말들을(레마) 듣고 지키지 않으면 나는 그를 심판하고 있지 않소. 세상을 심판하러 오지 않았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오.
(요 12:48) 나를 배격하고 내 말들을 받지 않고 있는 이는 그를 심판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소. 내가 말한 그 말씀, 그것이 마지막 날 안에 그를 심판할 것이오.
(요 12:49) 나는 내 자신 밖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를 보내신 아버지 그분께서, 내가 무엇을 말할까 그리고 무엇을 발언할까 나에게 명령을 주셨소.
(요 12:50) 그리고 (나는) 그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이다 라고 알았소. 그래서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소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하셨던 것 처럼 그렇게 (나도) 말하고 있소."
정도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48절 '내 말들을'은 레마의 말씀들 즉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리고 앞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듣고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어서 '내가 말한 그 말씀'의 '말씀'은 로고스이다. 바로 이 로고스가 마지막 날에 주님을 배격하고 그의 레마의 말씀들을 받지 않는 이들을 심판할 것인데, 이 로고스는 바로 로고스 말씀이신 주님께서 과거 모세에게 주신 '그 법' 즉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로고스 말씀이신 주님께서 구약의 하나님과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50절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보통 영원히 사는 것으로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이 영생을 설명하는 구절이 여기와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성경에서 '영원' 이라는 말은 '세대 안으로' 혹은 '세대들 안으로' 라는 명사형과 그 형용사격인 여기의 '영원한 aionios'라는 말로 되어 있는데, 시간과 공간에 익숙해진 우리는 시간적인 개념으로 밖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단어는 시간적인 개념을 넘어서 질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곧 영생이 되는데, 이 '명령 entolé' 이라는 단어는 '명령하다 entolemai'에서 왔고, 다시 이 단어는 'en'과 '이루다 teleo'와 연관된 'telomai'의 합성어이다. 즉 명령은 무엇인가 명령한 것이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후에 19:30에서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신다. 49절에 이 명령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신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 명령을 지키셨고 이루셨으며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으로' 믿어야 한다.
주님, 주의 공로를 나의 것으로 취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온전히 받으시고 이루셨음을 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