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의 발을 씻기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들로 존중함 (요 13:12-20)
보통 헬라어로 '알다'는 완료형 '알았다'의 시제를 쓰지만 12절은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 그리고 주님이라 불렀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발들을 씻으신 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주님은 '내가 그대들에게 했던 것 처럼 그대들도 하고 있어야 함에 그대들에게 (내가) 본을 주었다'고 15절에 설명하신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무리 주인으로서 본을 보여 주셨다고는 하지만 단 한번만 하셨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소 부담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 할 것, 즉 오늘의 섬김을 오늘만 하면 된다. 내일은 내일의 섬김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내일 일이다.
16절 '아멘 아멘 (내가) 그대들에게 말한다. 종이 그의 주인보다 크지 않다 피송자 또한 그를 보낸 이 보다 크지 않다'는 말씀 또한 '아멘 아멘'으로 강조하시는데, 14:12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는 구절과 부딪치는 것 같게 들린다. 주님이 하신 일들 그리고 그 보다 큰 일을 믿는 이들이 하게 될 것은 맞지만, 동시에 우리는 주님의 종이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고 행해야 함을 말씀한다. 그래서 이것을 알고 또한 그렇게 행하면 행복할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17절), 목회자들 가운데 처음에는 매우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주님만을 섬기다가 능력이 따르자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게 된 이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이들은 행복한 이들이 아니다. 행복한 이들은 의를 위해 핍박받은 이들이다 (마 5:10).
19절은 '이제부터 (나는) (그것이) 되기 전에 그대들에게 말한다, (그것이) 될 때, 그대들이 '내가 곧 나 ego eimi'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자신이 ego eimi 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로 믿게 하기 위함인데, 따라서 20절은 다시 '아멘 아멘'으로 강조하시며 '(내가) 보내는 누구든 받는 이는 나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나를 받고 있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고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사람' 보다는 '받다'라는 동사가 부각되는데, 특히 현재진행형으로 되어 있어서 지금 받는 즉 영접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여기 '보내다'라는 단어는 앞서 16절과 연결되는데,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성령으로 계속해서 그의 종들을 보내 오셨는데, 그러한 종들을 받는 이들은 주님을 받는 것과 동일함을 말씀한다. 사도 바울도 살전 2:13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기록했는데, 소위 '주의 종'이라 불리든지 아니면 '작은 소자'이든 간에 주님께서 보내신 이를 우리가 받을 때 주님을 받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과 형제임을 알고 그렇게 서로 존중하며 섬겨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선생 혹은 주님이시며 궁극적으로 에고 에이미 이십니다. 한 주, 한 하나님 아래 우리 모두가 주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소명자들임을 알게 하소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아가페 사랑하게 하소서. 이것이 참된 행복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