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주시는 힘으로 (요 14:1-14)
이제까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걱정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너희들의 마음을 요동쳐지고 있게 하지 말아라. 하나님 안으로 (너희들은) 믿고 있다 그리고 내 안으로 믿고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1절). '요동치다'는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로 처음에는 5장 못이 '동할' 때 라는 의미로 쓰였고, 주님께서 '영에' 대해 통분한 것에도 쓰였는데, 이제 제자들의 '마음'에 대해서도 쓰인다. 주님께서는 평안을 주시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요동쳐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요동쳐지게 두지 않을 수 있는데, 하나님 안으로 또 주님 안으로 믿고 있음으로 가능하다. 가슴이 요동칠 때, 우리는 하나님 그리고 주님 안으로 믿는 것을 기억함으로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2절은 꽤나 많은 오해를 낳게 한 구절인데, 번역이 잘 되었다고 하는 킹제임스역에서 '있을 곳'을 의미하는 말을 '저택'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마치 천국에 가면 대저택에서 살 것으로 오해하게 했다. 하지만 원어를 직역하면 '내 아버지의 집 안에는 많은 있을 곳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아니라면, 너희들에게 장소를 준비하러 가고 있다고 (내가) 말했겠느냐?' 정도가 된다. '내 아버지의 집'이 있고, 그 '집' 안에 '많은 있을 곳들'이 있으며, 주님께서는 '장소'를 준비하러 가신다. 이어서 3절로 이어지는데,'그리고 만일 (내가) 가게 되면 그리고 너희들에게 장소를 준비하면, 다시 (나는) 오고 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너희를 함께 받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도록' 이라고 말씀하며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집' '있을 곳들' '장소' 이 모두는 주님과 우리가 함께 있을 어떤 곳임을 뜻한다. 앞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는 어떠한 곳이며, 거기에는 많은 '있을 곳들'이 존재하고, 또 주님은 '한 장소 (단수)'를 준비하신다는 의미인데, 이 '집'은 '교회'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딤전 3:15), 또 이 '교회'는 '너희'라고 한다 (고전 3:9). 궁극적으로 이 '교회'는 '새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준비하시는 '장소'다.
흥미로운 것은 4절에 주님께서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곳 그 길을 (너희는) 알았다'고 말씀하시지만 5절에 도마는 '주님,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이미 알았지만 자신들이 알았다는 것은 몰랐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그 곳' 그리고 '그 길'이 당신 자신이시며, 그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말씀한다. 6절에 다시 'ego eimi'로 말씀하시며 "나는 이다 그 길 그리고 그 참 그리고 그 생명. 만일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고 있지 않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 '오다'라는 동사는 '가다' 혹은 '오다' 모두를 의미하는 말로 보통은 '오다'를 말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아버지께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7절은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또한 내 아버지를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도마에 이어서 또 빌립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이) 만족합니다." 라고 구한다.
그래서 9-12에 또 다시 "내가 이렇게도 길게 너희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너는) 나를 알지 못했느냐, 빌립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대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가? /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는 말들은(레마) 내 자신으로 부터 말하고 있지 않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의 일들을 하고 계신다. /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에 나를 믿어라. 그런데 만일 아니라면 그 일들 그것들을 통해서 믿어라. /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안으로 믿는 이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그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보다 큰 것들을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과 아버지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데, 이러한 진리를 믿는 것이 어렵다면 '그 일들 그것들을 통해서 (라도) 믿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곧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 이 땅에는 더이상 계시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신 일들만이 기록에 남는데, 주님 안으로 믿는 이는 주님께서 하신 일들도 하고 더 큰 것들을 할 것이라 말씀한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승천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 이해되지만,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그 일들을 나타내신다.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일들을 해야 하는데, 단수로서의 '일'은 주님을 '믿는' 일이지만, 복수로서의 '일들'은 그 관계적 믿음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며, 이러한 일들에 대해 베드로가 벧전 4:11에서 '누구든지 말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같이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십시오. 이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무궁토록 그분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우리말 성경)' 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 우리의 힘으로 일하지 않고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하며 더 큰 일들을 주님의 힘으로 해야 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찬양을 받으소서. 감사를 받으소서. 우리는 주님의 종들이고 소유입니다. 우리를 통해 역사하셔서 주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시며 존귀함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주의 이름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