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계속 연결되어 깨끗해짐으로 아가페 열매를 맺음 (요 15:1-8)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어떠하심을 계시하시는 것으로 가득한데, 주님 스스로 '나는 ~이다 ego eimi'라고 종종 말씀하신다. 1절에도 "나는 (그) 참 (그) 포도나무 이다"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우리말 '포도나무'는 '나무'라는 말이 있어서 영단어 tree로 생각할 수 있지만, 원어는 ampelos 즉 영어의 vine이다. 이것은 중간에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위로 커가는 일반적인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고, 본줄기는 있지만 가지와의 구분이 모호한 특이한 식물이다. 열매라고 하면 무화과 나무나 올리브 나무도 열매를 맺는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포도나무로 말씀하신다.
또 '그리고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농부는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자다. 그래서 2절은 "열매를 맺지 않고 있는 내 안의 모든 가지를 그가 그것을 가져 가신다 그리고 열매를 맺고 있는 모든 (것)은 더욱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신다" 라고 농부의 하시는 일을 말씀한다. 흥미로운 것은 가지는 포도나무로 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포도나무에 속했고 그래서 '내 안에'라고 말씀하지만, 그들 중에 '열매를 맺지 않고 있는' 가지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가지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져 가시'는데, 이 단어는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에서 '메다'와 동일한 단어이다. 요한은 '이단'에 대해 요일 2:19에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기록하는데, 이렇게 다 같은 기독교인 혹은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라고 모두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고 있지 않는 이들은 '내 안에' 즉 주님으로 부터 '가져 가시'는데, 주님과의 관계가 결국 끊어지고 6절에는 불살라 질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깨끗하게 하다 kathairó'라는 동사는 3절 '이미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을 통해 깨끗한 (사람들) 이다'에서 '깨끗한 katharos'이 그 어원인데, 성경에서 여기 단 한번 나오는 말이다. 식물의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해충 등을 제거하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영어에서는 prune이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가지를 치는 이유는 더 큰 열매를 맺도록 양분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함인데,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서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오히려 세상의 것들은 주님께서 하나하나 제거하신다. 그것은 '그 안에' 있더라도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4절).
다시 주님께서는 5절에 '나는 그 포도나무 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너희'를 말씀하시며 '그리고 너희는 그 가지들이다'라고 말씀한다. 앞에서 잠간 언급했지만, 포도나무는 줄기로 되어있어서 어디까지가 줄기고 어디까지가 가지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부분들이 가지들이지만, 넝쿨처럼 되어 있어서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포도나무의 놀라운 면인데,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지들'이라 말씀하시며 이것은 우리가 각자 독립해서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주님 자신의 뻗어나가심이라는 것을 말씀한다. 그래서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자'가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나의 (어떠함)과 따로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주님과 생명적인 문제에서 동일한 존재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받는 구원은 세상 종교들이 주장하는 그것과 다를바 없고 따라서 열매도 맺고 있을 수 없다. 물론 주님만이 경배의 대상이시고 홀로 영광받으실 분이시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어떠하심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리시기 원하신다. 그의 뻗어나감이 되기 원하신다.
6절은 다시 '만일 누구든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그 가지처럼 던져진다 그리고 말라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 그리고 불 안으로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태워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소위 불신자 혹은 비신자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계속해서 '내 안'의 사람들에 대한 것인데,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 라는 주장에 대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입증한다. 물론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지만, 이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렇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로서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단언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소유한 '구원의 확신'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만 겸손함으로 주님께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
7절은 자주 오해하는 구절인데, 중간만 읽으면 '너희가 원하는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이룰 것이다'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만일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이라는 분명한 조건이 있는데, 그럴 때 "(너희가) 뜻하고 있는 무엇이든 구하시오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에게 되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주님 안에 거하고 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른다면 우리가 원하고 뜻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것과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만 남는다. 그러면 우리의 뜻은 주님의 뜻과 완전히 동일하게 되어 그러한 것을 구할 것이며 또한 그것들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구하시오' 부분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아오리스트로 되어 있다. 소위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것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8절은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있으면 이것 안에 내 아버지께서 영광되어지신다 그리고 (너희들은) 나에게 제자들이 된다"라고 기록하는데, 여기 '맺다'와 '(제자들이) 된다"라는 동사 모두 가정법으로 되어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뜻하기도 하고, 소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이 많은 열매를 맺고 있기 바라셨다. 그러한 열매는 주님의 제자들이 드러나고 영광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얼마나 진정,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15장에 '열매'라는 단어가 8번 나오는데, '많은' 혹은 '더욱' 이라는 형용사가 붙지만 모두 단수로 되어 있다. 그래서 '열매들'이 아니라 '열매'인데, 갈 5:22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 시작하며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열매 즉 '아가페'임을 말씀한다. 그래서 원어로 직역하면 '그러나 그 영의 열매는 (입니다, 단수 동사) 아가페 사랑 기쁨 평안 장고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이니) 이런 것들을 대적할 법은 있지 않습니다 (갈 5:23)' 정도가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는 그가 아가페 이심 같이 우리도 똑같은 아가페를 맺는 것이다.
주님, 열매를 맺고 있지 않다면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을 증명함을 봅니다. 이는 주님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것임을 압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더욱 깨끗함을 입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주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주님의 뻗어나김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