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 안에서 구한다는 것의 참 의미 (요 16:16-24)

16절을 원어로 가깝게 번역하면 '작은 (동안을) 그리고 (너희는)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작은 (동안을) 그리고 나를 볼 것이다. (아버지께로 (나는)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가 된다. 처음 '보다'는 '주목하다'지만 둘째는 '보다'인데, 주님이 잡혀 죽으실 때 제자들은 주님께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다시 잠간 동안 주님을 목도한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승천하신다.

이 말씀을 물론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기에 무슨 뜻인지 서로 물었는데, 주님께서는 20절을 '아멘 아멘'으로 시작하시며 제자들은 울것이고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 말씀한다. 주님께서 죽으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데, 하지만 '너희의 슬픔은 기쁨 안으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며 부활을 암시하신다. 그런데 이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에 비유하시는데, 과거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죽음을 동반할 수 있을 만큼 큰 고통 혹은 슬픔이었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기뻐하며 더 이상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마치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에 비유한 것은 흥미로운데, 처음에는 '아이'를 낳는 것을 말씀하지만 후에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남을 말씀한다. 즉 '아이'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데, 먼저 주님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0)' 즉 인간으로서 처음 부활하신 분이심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주님은 인류 역사상 첫 아담류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그 아담류를 끝내신 '마지막 아담 (고전 15:45)'이시며, 아담은 '첫 사람'이지만 주님께서는 둘째 인류 즉 하나님 안에 거듭난 이들인 둘째 사람 즉 '한 새 사람' 이시다. 주님의 죽으심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었지만, 동시에 우리로 그 죽으심을 본받고 아담에 속한 것을 끝내고 부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치 이 '그 여자' 처럼 제자들도 이제는 슬퍼하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그들을 다시 보실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기뻐할 것이다. 이러한 기쁨은 죽음을 통과한 부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기쁨을 앗아 갈 수 없다. (22절).

23절은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개역개정)'고 기록하는데, 다른 번역번에는 '묻다'를 '구하다'로 번역했다. 이것은 아마도 뒤에 '무엇을 구하든지'가 와서 그랬을 수 있지만, 원어로는 '묻다'가 더 맞는 것 같다. 앞서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서로 물었는데,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에 대해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

다시 '아멘 아멘'으로 말씀하시며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가 내 이름 안에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마 7:7에서 주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때에는 '내 이름 안에서'라는 말씀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내 이름 안에서'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단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끝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영어에도 with가 아니라 in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헬라어에서도 이름에 en을 쓰는 것 혹은 사람에 대해서도 en을 쓰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라 한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en이라는 전치사를 쓰는 일이 많지 않은데, 성경은 거의 전부 주님의 이름에 대해 en을 쓴다. 이것은 우리가 구할 때 주님 안에서 주님께 속한,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을 구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24절은 '지금까지는 (너희는) 내 이름 안에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는데, 즉 '구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자들이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하고 있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받을 것이다. 너희 기쁨이 채워졌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이 진정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약속의 참된 의미다. 우리가 우리의 정욕을 위해서 구하면 주시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리고 만일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된 것이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은 하면서 속으로는 우리의 영광을 취하려 하는 외식함으로 구한다면 주님께서는 주시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주님의 이름 안'에서 구하지 않고 무언가 큰 것을 이루거나 어떤 좋은 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헛것이고 거짓된 것이다. 후에 마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것이 되어 불로 시험 받을 때 모두 타고 남은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고전 3:12).

주님, 주님께 영광 돌리고 모든 것에서 주님을 위해 구하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물질로 구제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해도 거기에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없다면 아가페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조그마한 섬김이라도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