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기억과 증언 (요 18:15-27)
15절 '다른 제자'는 아마도 요한일텐데, 문맥상 그는 당시 대제사장 즉 안나스와 인맥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사회는 종교를 떠나 생존할 수 없는 구조였지만, 이러한 연줄을 가진 요한이 주님의 신성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인데, 그는 주님의 신성을 목도하고 요한복음과 요한 1, 2, 3 그리고 계시록 등 주님의 신성을 기록한다.
이에 비해 '수제자'로 알려진 베드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문 앞에만 서 있었는데, 요한이 그를 데리고 들어온다. 하지만 들어오는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 여자 아이는 베드로의 모습이 눈에 익었는지 제자들 중 하나기 아닌지 묻는다. 들어오는 와중이라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텐데, 베드로는 "아니다"라고 급히 잘라 말한다. 상황은 매우 불안했지만 흥미롭게도 베드로는 종들과 장교들과 함께 숯불에 몸을 쬐고 있었는데, 추위 때문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우선이었다. 그는 연약한 인생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대제사장은 주님께 그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하여 물었는데, 가르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따르던 자들에 대해서도 심문한 것을 보면 아마도 모두 잡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8절에 다른 이들은 놓아달라고 말씀하셨던 것 처럼 다른 대답 대신에 "나는 세상에 공개적으로 말했소. 나는 항상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 안에서 그리고 성전 안에서 가르쳤소. 그리고 아무것도 비밀 안에 말하지 아니했소. 왜 나에게 문의하고 있으시오? 내가 말한 것을 들은 그들에게 문의하시오. 보시오 그들은 내가 말한 것을 알았소 (20-21절)" 라고 대답하신다.
이러한 대답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대제사장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장교들 중 하나가 나서서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렇게 대답하는가?" 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손바닥으로 쳤다. 소위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다시 "(내가) 악하게 말했으면 그 악에 대해 증언하시오. 그런데 잘 (했으면) 왜 나를 치고 있는가?" 라고 답하시는데, 여기 '악하게'는 '나쁘게' 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전혀 나쁘게 대답하시지 않은 것인데 이러한 '법' 보다는 '감정'이나 '지위' 등이 딸려 적용된다. 결국 안나스는 주님을 묶어서 그의 사위이며 동시에 같은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파송한다. 아마도 구약의 법을 따르려던 것 아닌가 한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가야바가 주님을 심문했다는 기록은 하지 않고, 다만 28절은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고만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비해 마태복음 26장은 여기를 가야바의 관정으로 기록하고 행 4:6에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라고 기록하며 안나스와 가야바에 대해 다르게 말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왜 있는 것일까? 마태복음은 그 대상이 우선적으로는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가야바가 안나스의 사위인 이유로 그 둘을 같이 보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당시 공식적인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안나스는 부유하고 권력도 막강했던 이유로 사병들을 움직일 수 있었고, 따라서 그만의 '관정'을 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는 당시 공식적인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주님을 보낸다. 기록 연대로는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쓰였고 그 다음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그리고 요한복음이 제일 나중에 쓰였기 때문에 요한은 이미 존재하던 기록을 바탕으로 마태복음을 토대로 기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 일이 일어난 배경을 가야바가 아닌 안나스의 관정으로 기록한다. 다시 말해 안나스와 친척이던 요한은 마태보다는 이 상황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억하며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25절 부터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기록하는데, 함께 불을 쬐던 종들과 장교들이 그에게 "당시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오?"라고 물었고 그는 부인한다. 다시 26절은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하나가, 동산에서 그를 본 것을 기억하고 물었는데, 당시 그는 베드로가 귀를 벤 자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를 확실히 기억했을 것인데, 이러한 기록은 안나스와 친척인 요한이 아니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다시 부인한다. 그러자 곧 수탉이 소리쳤다...
주님, 복음서를 위해 네 명의 기자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요한이 다른 모든 신약 책들이 기록된 후에 그의 복음서와 서신들과 계시록을 쓴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세번만 주님을 부인했지만 저는 속으로 또 생각으로 또 행동으로는 수없이 주님을 부인했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용납하심과 다시 용기 주심이 이 아침에 충만하게 하소서. 요한이 과거 기억을 더듬으며 가장 정확하게 기록했던 것 처럼 저도 주님을 만났던 때 엘벧엘을 기억하며 다시 새롭게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