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신약시대에는 적용도 달라짐 (요 21:1-14)

아무리 주님의 부활을 목격해도, 주님께서 무엇을 할지 말씀해주시기 않으면, 혹은 그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제자들은 베드로가 다시 고기 잡으러 떠난다고 말하자 모두 그를 따른다.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주님께서 "아이들아, 아무 물고기든 소유하지 않았는가?" 라고 그들에게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시오. 그리고 (그러면) 발견할 것이오"라고 말씀하시는데, 4복음서는 '신약성경' 안에 있지만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아직 구약시대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당시 존재하던 물리적 성전이나 구약의 여러 전통들도 인정하셨다. 하지만 이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더 이상 과거의 것들은 유효하지 않다. 제자들은 과거 어부들로서 그들의 방법을 그대로 써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지만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보통 고기잡이 배에서 그물을 던질 때는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한 쪽으로만 방향이 잡히는데, 특히 오른손 잡이가 리더가 되어 그물을 던지면 왼쪽으로 던지게 된다. 그것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던지려고 하면 리더를 바꿔야 하거나 아니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은 약간의 변화일 수 있지만, 만일 2-3명이 타는 작은 배가 아니라 사이즈가 조금 되는 배에서라면 배의 구조에 따라 매우 힘들 수도 있다. 여기에 쓰인 '배'는 조금 큰 사이즈를 의미하는 ploion이며 8절의 '작은 배'를 의미하는 ploiarion과는 다르다.

이것을 신앙 공동체 혹은 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실의에 빠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것 처럼 보이는 교회가 다시 힘을 얻고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는 익숙한 방법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바꾸면, 특히 과거 구약의 방법을 벗어나서 단지 방향만 조금 바꾸면 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전통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것이 현재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실지라도 작금의 교회들은 듣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무튼 제자들은 밤새 수고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마지막 시도로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졌을 수도 있는데, 결론은 큰 물고기들이 가득해서 그물에 153마리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 153이라는 숫자는 매우 신비로운 것으로 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께서 '그러면 잡을 것이다' 혹은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발견할 것이다'라고 하셨다는 점이다. 어부들에게 있어 물고기는 잡아서 먹거나 팔아서 생활하는데 쓰는 것이고, 이것은 목자들에게 있어서 양들은 털과 젖과 고기를 얻는 대상이지만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 처럼, 주님께서 물고기들에 대해 '잡다' 대신에 '발견하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이 물고기들이 단지 태생적 어부들에게 잡히거나 낚이는 존재가 아님을 가르쳐 주신다. 주님께서 처음 그들을 부르셨을 때 '나를 따라오고 있으라. 내가 너희들을 사람들에 대한 어부들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원어에는 '사람 낚는' 이라는 말이 없이 영어 처럼 fisher of men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견하다'라는 단어를 쓰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이제 영적 어부들로 파송 받은 그들의 소명을 다시 일깨워 주신다.

해변에 서 계셨던 주님과 제자들이 탔던 배 사이의 거리가 약 90미터 정도 되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 보기는 힘들었지만 요한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겉옷을 둘렀는데 그가 알몸이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자신을 바다 안으로 던졌다. 빨리 주님께로 오고자 했기 때문인데, 대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로 왔다.
그들이 땅에 도착하자 놓여있는 숯불과 그 위에 놓인 물고기 그리고 빵을 본다. 주님께서 손수 준비하셨다. 그리고 와서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더우기 가까이 오셔서 빵을 취하셔서 그들에게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셨는데, 과거 오병이어나 칠병이어를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지신 것인데, 주님은 왜 빨리 승천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까? 다시 말하지만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에는 주님의 승천이 없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나타나지신다.

주님, 이 시간에도 말씀하여 주소서. 그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움이 커지지만,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그것은 진리이며, 진리를 알 때 자유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모든 습관과 문화와 풍습에 따라 왼쪽으로 그물을 던지던 것에서 반대로 조금 어색하더라도 오른쪽으로 던질 수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