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도는 응답받을 수 밖에 없음 (막 11:15-25)
여러 말씀이 있지만 생명의 삶에서 기도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22절 이하의 내용을 살펴보면, 22절 '하나님을 믿으라'는 원어로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라'로 되어 있다. 즉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함을 일깨워 주신다. 이것은 믿음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님을 말씀하는데,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것은 결국 은혜이다. 23절 역시 마치 뉴에이지나 한동안 회자되던 '시크릿' 처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어로는 '아멘(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에게 들려지기를! 그리고 바다 안으로 던져지기를! 이라고 이르면 그리고 그의 마음 안에 의심되지 않으면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이 되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 있을 것이다' 정도가 된다. 여기 '들려지다' 그리고 '던져지다'라는 동사는 아오리스트 시제 명령형이기 때문에 기도형식이다. 막 4:39에 주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셨는데, 이것은 둘 다 명령형이지만 '잠잠하라'는 능동태 현재진행형 그리고 '고요하라' 완료형 수동태로 되어 있어서 주님께서 창조주로서 바다에게 명하신 것이다. 하지만 23절의 '하소서 (혹은 할지어다, 하기를)'에 해당하는 아오리스트 시제는 명령형이기는 하지만 공손한 표현으로 바라는 즉 기도를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가 주님 흉내를 내어서 '옮겨라!'고 산에 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옮겨지기를!' 이라고 기도로 명하는 것인데, 이는 '마음 안에 의심' 역시 '되어지지 않'는 것이 필요하며 '그가 말하는 것이 되어지고 있다고' 즉 이미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믿으면 그것은 그에게 그렇게 '있는' 즉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히브리서 11장 1절이 믿음에 대해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데, 앞으로 되어질 것들이 이미 된 혹은 되고 있는 것 즉 실체화와 그에 대한 증거가 믿음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되소서!'라는 바람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해 현재 되고 있음을 믿고 그에 따라 행하며 사는 것이 응답받는 혹은 응답을 이미 받은 기도임을 말씀한다.
그래서 앞서 23절은 '기도'라는 말은 없지만 아오리스트 시제를 쓴 명령어이기 때문에 24절에 '기도'라는 말씀이 따르는 것이다. 24절은 원어로 '이것을 통해 너희들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모든 것을 받은 것으로 믿고 있으라 그리고 (그리하면) 너희들에게 (그것이) 있을 것이다' 정도가 되는데, '무엇이든지'와 '모든 것'이 있고 이들에 대해 기도하고 구해야 하며 받은 것으로 믿고 있어야 함을 말씀한다. 그래서 기도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진정 믿으며 되어짐을 인정하는 고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기도와 함께 용서를 말씀하시는데, 25절에 '혐의'라는 말은 없고 '대적 kata'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누구든 대하여 (대적하여) 아무것이든 소유하고 있으면' 이라고 되어 있다. 기도할 때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우선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응답받지 못할 것을 말씀한다. 남을 용서하지 않은 이는 아버지께 용서받지 못한 자이고, 따라서 죄가 있는 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
주님, 내가 바라는 원 혹은 원하는 것을 말해내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으로 주의 뜻대로 구하며 그것이 되어지고 있음을 믿는 것이 참된 기도임을 다시 배웁니다. 기도하다가 생각나는 미워하는 형제나 자매에 대해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며 주 앞에 흠없이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