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구속을 감당하시는 그리스도; 이제 주님과 기도로 동역하는 우리들 (막 14:32-42)
32절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셨지만 그들에게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셋만을 데리고 가셨는데, 그들 역시 함께 기도하게 하지 않으시고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고 '조금 나아가' 홀로 기도하셨다. 함께 힘을 합해서 기도할 수도 있었고, 우리 식으로 통성기도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으시고 다만 제자들에게 (우선은) 깨어있으라 말씀하시고 당신께서는 혼자서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35절은 '땅에 엎드리어'라고 기록되어서 어느 '성화'처럼 주님께서 큰 바위에 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은 성경적이 아님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주님의 기도는 매우 특별한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시는 내용의 기도였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첫번째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그리고 기도하라' 명하시지만 그들은 '한 시'도 기도할 수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복음서를 통틀어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다. 주님 부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비로소 기도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개역개정은 38절을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그 영은 준비되어 (원한다) 그러나 육신은 약하다'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 영'은 많은 곳에서 '성령'으로 번역되었는데, 즉 주님께서 주실 '그 영'은 준비되어 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오시지 않아서 약한 육신으로는 할 수 없음을 이해하신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이 육신의 '약함'은 몸이 피곤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데, 사실 '그 영'과 대조한 쓸데없는 '육신'을 의미한다. 즉 주님께서는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창 6:3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영적인 상태에서 떠나서 육신으로 타락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영은 사람과 함께 하실 수 없다. 그래서 이 '육신'은 우리 연약한 '몸'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없는 천연적 기질을 가진 타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번이나 같은 기도를 하셨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굽히고 아버지의 뜻을 따를 것을 결정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기도의 참된 모습이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졸라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연약한 우리가 받고 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과거 주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하시던 기도는 주님께서만 감당하셔야 했던 것이었지만,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믿는 자들은 권능을 받았으며 (행 1:8), 고전 3:9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씀한다. 육신은 아직도 연약하지만 이제 '그 영'은 준비되어 이미 이 땅에 부어지셨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 즉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일하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한다.
주님, 육신은 연약합니다. 하지만 그 영은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고 내 자신의 뜻과 기질을 내려 놓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주님과 거래하려는 시도를 끝내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에 속한 사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