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인 동시에 언약인 미완료 동사 (신 5:1-11)
신명기의 '신'은 '신신당부'할 때의 그 '신'으로 '거듭하다'를 의미하고 '명'은 '명령'의 '목숨 명'이다. 즉 앞서 있던 명령을 다시 한다라는 의미인데, 영어 Deuteronomy는 헬라어에서 온 것으로 '두번째 법'이란 뜻이며, 히브리 제목은 '다바림'으로 그냥 '말씀(들)'을 의미한다. 신명기의 내용은 앞선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등의 말씀을 되풀이한 것인데, 마치 우리 말 '신신당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셰마 이스라엘'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신당부하시는 사랑을 엿볼 수 있다.
1절 역시 우리말은 '이스라엘아... 듣고' 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에는 '셰마 이스라엘'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좀 원어에 맞추어 '그리고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들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들을! 그것들을 배우며 지키기에 조심하도록!' 정도로 좀 더 역동적으로 번역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 싶다. 아무튼 모세는 과거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세우셨던 것을 상기시키는데, 흥미롭게도 3절은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조상'은 애굽 땅에 있던 이들을 의미하겠지만, 분명 호렙산의 일도 40년 전 과거의 일이었으며 당시 이 모세의 말을 듣고 있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였을 것임에도 모세는 '살아 있는 우리'를 말하며 하나님의 언약은 지금 살아 있는 자들에게 유효한 것임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7절부터의 모든 계명 즉 과거 출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의 모든 명령은 그 형태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명령형이 아니라 소위 Qal 미완료 동사로 되어 있다. 이것을 대개 명령형으로 이해하기는 하지만, 히브리어에도 분명 1절 '들으라' 같은 명령형 imperative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단지 직접 명령으로만 해석하는데에는 다소 의문점이 생긴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Do not이 아니라 You shall not으로 번역되었는데, 우리 말로 하자면 '하지 말라'가 아니라 '하지 말것이다' 정도가 된다. 이것은 미완료로서 어쩌면 미래를 말하고 있고, 이는 과거의 세대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언약이다. 물론 미완료는 현재를 포함하기 때문에 따라서 '오늘 살아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서 7절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너희는 소유하지 말(않을) 것이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것은 명령임과 동시에 '언약'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명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소유하지 않게 될 것을 말씀하시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도 제목이 되어, '주여 주님만을 참되신 신으로 섬기게 하소서!'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7절의 대상이 2인칭 단수로 되어 있다. 즉 '너는' 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각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한 인격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 또한 각 믿는 자는 물론이고, 모든 믿는자들이 하나된 공동체로서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깨달을 수 있다. 또 하나 '소유하지 않을 것이다'의 동사가 2인칭이 아니라 3인칭 단수로 되어 있는데, 왜 '너'는 2인칭 단수로 되어 있지만 동사는 3인칭으로 되어 있을까? 아마도 이것은 당시 이 명령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 기록을 통해 동일한 신신당부하는 말씀을 듣게 될 미래 세대(들)도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8절에 와서 '만들다 (만들지 말 것이다)'는 다시 미완료 형태로 돌아오는데, 9절의 '절하다'와 '섬기다' 역시 미완료 형태지만 Qal이 아니라 Hitpael 그리고 Hofal이라는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 8절과 9절은 한데 묶여서 두번째 계명이 되는데, 우상들은 그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 앞에 절하며 섬기는 것이 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우상'이라 번역된 pesel이라는 말은 '깎아 만든 형상'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그 앞에 절하거나 섬기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예술적인 '조각품'은 여기에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각품들 조차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지배하게 된다면 우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다시 11절에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게 취하지 말 것이다'의 '취하다'가 Qal 미완료가 되어 세번째 계명이 되는데, 이 단어는 'nasa, nasah'로 '들다 지니다 취하다' 등등 매우 많은 의미를 지닌다 (영어로 100개 이상의 단어로 번역되었다). 즉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해 매사에 거룩히 여길 것을 말씀하는 것인데, 결국 처음 계명 넷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거나 취급하면 인생은 허무하게 끝날 것이지만, 그 이름을 귀하게 여기면 인생은 의미와 보람으로 충만할 것이다.
주님,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들은 우리를 억압하거나 괴롭히려 하심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언약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명령들은 주의 영을 우리 안에 두심으로 언젠가 온전히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다만 오늘 우리는 주의 말씀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명하셔서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를 세우소서. 주의 영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