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생명, 의 (신 6:20-25)
20절의 '아들'은 단수이며 남성 명사다. 이것은 아들 하나에게만 이렇게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금 단수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손 역시 '아들'로 말씀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스라엘의 아들이 언젠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혹은 무엇이냐)' 라고 묻게 된다는 것인데, 만일 그러한 물음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러한 질문을 할 것이고 만일 그러한 질문이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실패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그 묻고 구하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구한다면 살 것이다. 이것은 한면으로 소위 가정교육의 중요성도 말하는데, 가정교육은 사회화나 기본 도덕은 물론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하며, 앞서 6-9절 말씀에 순종했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말을 할 수 있을 때 쯤에는 이러한 매우 기본적이며 정상적인 질문을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21절 자녀들에게 과거 자신들이 종이었음을 말하는 것인데, 주께서 그 종 된 것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그 언약에 따라 이제 자유인들과 택하신 민족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 시대에도 동일한데, 우리는 과거 죄인들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의롭게 되었고 자유자, 하나님의 백성, 왕족 제사장들이 되었음을 우리 자신도 온전히 믿고 또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24절은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음을 기억하며 그들은 지켜 행해야 하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피 안의 새 언약을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성찬을 하며 그 복을 누린다. '복'으로 번역된 말 '토브'는 '좋다, 잘되다'를 의미하는데, 창세기 1장에 계속 나오는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그 '좋았더라'이다.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바로 복이며 선이다. 이러한 복은 우리를 '살게 하'는데 바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는다는 주님의 말씀과 이어진다.
25절은 소위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의'를 말하고 있다. 이 '의'라는 것은 그 기준이 하나님께 있고, 그 반대인 죄 역시 그 기준이 하나님을 벗어난 것인데, 그 주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면.. 우리에게 의로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명령'의 명령은 단수인데, 이제까지 많은 계명들과 율례들과 법도들을 말씀하셨지만 명령은 하나다. 그리고 이 명령은 다시 말해 '의'와 관계가 있는데, '의'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는 구절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에서 계속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고, 갈 3:6도 이이 창 15:6을 인용하며, 더욱이 바울 사상과 부딪힌다고 오해하는 야고보 역시 2:23에서 이 동일한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주님, 우리 이방인들도 원래 계획하신대로 그 선하신 뜻 안에서 부르셔서 백성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선과 생명과 의를 베풀고 계심을 믿고 주 앞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그 모든 복을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