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성을 온전히 진멸하심 (신 7:12-26)
신명기라는 말은 다시 말해 '거듭 명함'이라는 의미인데, 그래서 그 기록된 내용은 전에 들었던 것들이 많다. 오늘 본문 역시 어제 내용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한 것인데, 소위 '노파심'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문자적 의미로 '노파심'은 '늙은 할머니의 마음'이며, 사전적인 의미는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이 많은 여인이 정말 터무니 없는 것으로 걱정한다면 모르지만, 다른 이들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 신명기의 많은 기록이 그러한데, 하나님께서는 계속 신신당부 하시며 말씀하신다.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도를 듣고 지키고 행하면 번성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실 것인데, 특히 15절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요즘 우한발 covid19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에 우리가 붙들만한 말씀이다. 16절은 다시 그 땅 모든 민족들을 진멸하라 말씀하시는데, 숫적으로는 이스라엘 보다 훨씬 많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던 여러 전쟁들을 기억하며 멸하라 하신다.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21절), 또 왕벌을 그들에게 보내어 남은 자들과 숨은 자들까지 모두 멸하실 것을 말씀한다.
흥미로운 것은 2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멸하기는 해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조금씩 쫓아 내실' 것을 말씀하는데, 그래서 이스라엘도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그 이유는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기 때문이다. 요즘 covid19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만 있게되자 여러 들짐승들이 도시에까지 내려와 거리를 활보한다고 한다. 사람이 사라지면 그 비워진 자리는 들짐승들이 차지하는데, 그러면 후에 그 들짐승들도 제거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이 가나안 일곱 족속들에 대해 영적으로 해석을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일곱 가지의 죄성으로 설명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러한 해석을 좋게는 보지만 모든 것을 영해하려 한다면 '급히 멸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 문제가 생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안의 모든 죄성도 빨리 제거를 하면 좋겠는데, 조금씩 천천히 해도 된다는, 아니면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현실적으로 우리의 죄성은 참으로 끈질기다. 그래서 금방 제거할 수도 없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걱정 혹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죄성 역시 주님께서 해결하실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또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모두를 진멸할 것인데, 오늘 본문에 이 '진멸'이라는 말이 5번이나 나오지만 원어에는 8번이 나오며 6개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7장 전체에는 12번이나 나오는데, 8개의 다른 단어들이다. 물론 모두 '멸하다, 부수다, 파괴하다' 등을 의미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진멸'을 의미하는 모든 단어들을 가져다 쓴 것은 그들을 진멸하는 그 진멸이 매우 확실할 것임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주님 주신 믿음으로 의로와졌고, 그 은혜로 구원되어졌으며, 주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져 가는데, 우리 안에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슬픈 여러 모양의 죄의 기질들은 주님께서 진멸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의 진멸하심에 동참할 것이며, 결국 왕벌까지 보내셔서 남고 숨은 것들도 모두 제거하실 날이 올 것이다.
주님, 주님 앞에 항상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이 나의 힘과 의지 보다는 주님의 선포하심에 있음을 믿습니다. 과거 승리의 기억도 있지만 실패의 경험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 함께 하심으로 승리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하나씩 죄들을 해결해 나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 그 빈자리를 주님의 말씀과 생명으로 채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