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추시어 자신과 하나님을 알게 하심 (신 8:1-10)
2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 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던 것은 불신에 의한 불순종의 결과였지만, 또 한면으로 이러한 광야 생활이 그들에게 필요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와 목적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떤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닌지 알기 위함'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오랜 기간 애굽의 노예 생활로 그들은 낮추어졌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낮추어지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들의 마음은 교만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위와 신분이 그들의 겸손이나 교만을 말해주지 않는데,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교만을 알 필요가 있었다. 여기 '알기 위함' 이라는 말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앞으로 그들이 불순종할 것을 모르실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앞의 '낮추다'와 '시험하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시는 것이지만, 이 '알다'라는 말에는 격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양방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3절에 다시 '낮추다'를 말씀하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셨다고 기록하는데, 만나는 매우 신비한 것으로, 땅에서 솟거나 결실하는 물질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왔 (시 78:24)'고 또 이슬처럼 (민 11:9) 내렸으며, '하늘 양식'이라고 민 11:9는 기록한다. 즉 이 만나는 육신을 위한 음식이었지만 땅의 소산이 아니라 그 근원은 하늘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만들었던 신비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 주신 이유와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다. 이 '살다'라는 말은 생활하다 라는 의미인 동시에 생명을 얻다 라는 뜻도 있는데, 음식을 섭취함으로 목숨을 부지하듯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음으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육신에 속한 것만을 섭취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진리임을 보여 주며, 또 우리의 일상 생활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주님께서는 이 만나에 대해 당시 조상들이 먹었어도 결국은 모두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으로서 사람이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것이라 말씀한다. 특히 주님 주시는 빵은 바로 주님의 살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오늘날 성찬 혹은 주님의 만찬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께서는 로고스 말씀이시기에 그 말씀을 우리 안으로 취해서 하나가 되면 현세에서 영생을 얻고 누릴 것을 의미한다.
주님, 요즘 우한발 covid19으로 많은 사람들이 광야 생활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겪음으로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지 드러나고, 얼마나 세상이 악하고 또 약한지 폭로됨을 봅니다. 세상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안식과 안전을 보장해 줄 것 처럼 보이지만 주님 말씀하신 영생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이 광야 생활은 세상의 헛됨을 깨닫게 하고 우리로 참 양식이신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게 합니다. 주님을 알고 또한 우리를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