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하는 죄과와 죄성을 끊으시는 주의 죽으심 (신 9:1-8)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첫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과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고, 둘째는 그 땅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이라 거듭 강조하신다. '공의'로 번역된 말은 'tsedaqah'로 '정의' 혹은 '의'를 의미하며, 그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 민족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진멸당해야 할 정도로 그 악함이 극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은 악함과 상관없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들이 택함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지 그들에게 공로나 공의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6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을 이후 1,500년이 지나서도 행 7:51에 스데반이 순교하며 당시 복음을 거스르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다시 증거하며 인용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400년 가까이 했고, 광야를 지나 약속하신 땅에 들어왔고, 그 후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불순종하며 목이 곧은 민족으로 남아 있었다. 죄가 전이된다거나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말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있는데, 그 이유는 민 14:18과 렘 32:18에는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이나 자식에게 갚으신다고 말씀하는 반면, 겔 18장에는 아버지의 죄악 때문에 그 자식이 죽지 않을 것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죄과'에 대한 말씀이지 '죄성'에 대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범죄할 때 그 죄과에 대해 자손들에게도 영향이 분명 미칠 것을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그 자손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따르면 그 죄과를 받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가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죄인이고 또 과거 노예나 종의 자녀 역시 노예가 되는 원리에 대해 요즘 가치관으로는 불공평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유전학적으로 보아도 나의 DNA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는 DNA를 조작해서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상영화이다. 이스라엘도 그들의 조상이 목이 곧은 백성이며 또 그러한 교만함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내려온 사실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신분이 바뀔 때도 있는데, 그것은 왕의 면천이나 입양 혹은 혼인에 의해서다. 과거 왕이 노예를 면천하는 문제 역시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는데, 왕이라고 마음대로 면천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는 대속의 죽음이 필요했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법적으로 완전히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입양하셨고, 이는 법적으로 우리의 죄과를 끝내신 것은 물론이고 또한 법적으로 우리를 아들의 위치에 놓으셨고, 또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죄성에 대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 (롬 8:29). 더욱이 우리는 앞으로 신부로 준비되어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말씀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과는 이미 끝났고, 이제 살아가는 동안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 처럼 우리 안의 여러가지 강해 보이는 죄성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가셔서 싸우신다.
주님, 나의 조상이나 나의 신분에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과가 끝났음을 봅니다. 이제 제 안에서 역사하셔서 익숙한 죄성을 하나하나 정복하소서. 끈질긴 이러한 죄성은 나보다 더 능력있음을 압니다. 주님의 공로와 성령의 신비하신 능력이 오늘도 나의 죄성을 치시고 거룩한 주님의 성품을 이끌어 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