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믿음, 행함 (신 11:22-32)

오늘 22절 역시 13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모든 길 안에서 걷기 위해,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기 위해'가 목적이 되고, 그로 인해 이 모든 명령을 잘 지키는 것은 방법과 과정이며, 그 결과는 23-25절 강대한 민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해 '여호와를 사랑하기 위해'가 목적이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는 것은 그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구원은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의 진정성은 행함이라는 열매로 나온다.  주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고, 그 은혜가 구원하시며, 우리로 그 모든 명령을 잘 지키어 결국 다시 우리는 주를 사랑하며 그 모든 길 안에 걷고 더욱 그 분을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는데, 마치 아담 앞에 생명 나무와 선악 지식의 나무를 두신 것과 같다.  22절 마지막에 '그에게 의지하면' 이라는 말이 있듯이 생명 나무는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지만, 지식의 나무는 내 안에 있는 인간적인 지식을 의지하게 하여 하나님과 분리시키게 한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 시작한 모든 인류는 그 앞에 생명 혹은 지식, 특히 생명에 이르게 하지 않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식, 그리고 복과 저주 앞에 있다. 하나님의 명령 즉 그 말씀 즉 그 생명을 택하면 살 것이고 아니면 저주를 받는데, 여호와를 따르지 않으면 그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외의 것들 즉 지식, 과학, 재물, 관계, 감정, 종교 등은 모두 다른 신들이 된다.

29절은 요단 건너 그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면 거기 위치한 두개의 산들 중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 명하신다.  이 '그리심 grizim' 이라는 말의 어원은 garaz 인데, 그 의미는 '자르다, 절단하다'이다.  왜 '자르다'는 말이 '축복'과 연결될까?  하나님을 진정히 따르고 의지하기 위해 그에 대적하고 대신하는 모든 것들은 잘려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할례를 시작으로 자아가 죽어야 하며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에 십자가를 적용하는 것이 바로 축복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에발'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27장 4절에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라고 다시 나오는데,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말하는 한편 이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른 후 모든 말씀을 기록할 것을 명한다 (27:3-8).  이것은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이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대하거나 암송할 때 소위 '축복의 말씀'만 골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말씀 즉 그 심판의 말씀도 함께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딤전 2:4),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지만, 그 기능은 흥미롭게도 소위 '천당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모르고 불순종했던 우리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후 10:5에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라고 기록하고, 롬 1:5에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라고, 또 롬 16:26에는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이라고 기록한다. 우리가 믿을 때 받는 축복은 소위 '네 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됨에 앞서, 전에는 굴복하고 순종하지 못했던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믿을 수 있고, 순종하며 또 그에 따른 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압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생명 나무와 지식의 나무, 축복과 저주가 놓여 있음을 봅니다.  주 앞에 순종함으로 주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도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