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나아가서 그 분의 생명으로 하나됨 (신 12:8-19)

오늘 말씀은 어제 말씀과 비슷하다.  신명기 자체가 다시 명한다는 말이지만, 그 내용들도 좀 더 자세하게 되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배움과 각인을 위한 것인데, 한번 듣고는 기억할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하면 배우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말씀에서 먼저 우상의 장소들과 우상들을 제거하라고 명하셨던 것 처럼, 오늘 8절은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고 명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과연 가능한 말씀일까?  '오늘' '여기에서' 각기 소견대로 사는데, 거기 간다고 바뀔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회개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런데 9절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라고 기록하고 10절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라고 기록하기 때문에 마치 현실적으로 안식과 풍요로움이 있기 전에는 제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즉 먼저 이러한 안식과 기업을 이루기 전에는, 또 평안히 거주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제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씀 같아서, 우선 현실적인 안정이 중요하며 그러한 것을 먼저 도모하라는 말씀처럼 들리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결국 이러한 안식과 평안 혹은 풍부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분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 원어에서는 '만일'이나 '때에' 라는 말은 없고 10절과 11절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5절 말씀처럼 11절은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가야함을 말씀하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갈 것을 명하신다.  먼저 번제인데,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태워 바치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속한 모든 것 즉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이나 그 무엇이든 주께 속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기억 혹은 기념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희생제물인데, 나의 죄를 위해 누군가 대신 희생되어야 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누군가 혹은 어떤 짐승의 희생으로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듯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엡 5:2에서 기록하며 이 역시 우리의 희생제물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의 공로를 의지하게 한다.  세번째는 십일조인데, 이것은 우리의 소유 또한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제 신약 시대에 와서 더 이상 십분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이 주께 속했음을 알고 마음에 정한대로 후히 드리는 것을 배우게 한다.  네번째는 거제인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 또한 예표로 요 3:14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또 요 12:34에는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고 기록한 것 처럼 그리스도께서 들려져야 하시고 또 들려지셨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서원물'인데, 원어에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이라는 말은 없다. 다만 '가장 좋은, 선택된'을 의미하는 mibchar (미브카르) 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기준에 있지 않고 오직 모든 것에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제물을 드리는 것은 각자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인데, 그 결과는 개인의 안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노비는 물론 이 모든 일에 섬기는 특별한 지파인 레위인들과 나눠야 함을 말씀한다.  하지만 이 또한 '여호와 앞에 즐거워' ' 해야 하듯 모든 것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다.  온전한 제사는 그 대상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그 결과에는 함께 누리는 기쁨이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고기는 이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도축해서 먹을 수 있지만 피에 대해서 만큼은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 명하시는데, 23절에는 그 이유에 대해 '피는 생명'이기 때문이라 말씀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씀인데, 피는 그 주체가 어떤 생명체인지 정확히 말해준다.  물론 유기물에는 모두 DNA가 있어서 분별이 가능하지만 피는 더욱 확실한데,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있어 피를 마시는 것은 개 처럼 취급하던 이방인들만 행하는 경악할 일이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라 말씀하시며 오히려 더욱 놀랄만한 말씀을 하신다.  이것은 '피가 생명'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주님의 살을 먹고 또 그 피를 마시는 즉 말씀을 우리 안으로 먹고, 성찬을 날마다 행하면 주님의 생명이 우리 것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다 (고전 6:1).

주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림자 처럼 누리던 것을 오늘 우리는 그 현실과 실재를 누리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이것을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히 누리기 위해 그 누림 안으로 더욱 들어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드림을 즐거워 하며, 함께 누리며, 가장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높이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