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하는 기독교 (신 12:20-32)
오늘 말씀은 어제 내용과 많이 겹치기 때문에 30절 이하를 묵상해 본다. 30절은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고 기록하는데, 이미 앞서 멸망한 이방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말씀하신다. 일곱 족속들이 모두 멸망했어도, 그들이 남긴 토속 종교의 잔재는 눈으로 보기에 사람의 종교성을 매혹케 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주님께서 이미 명하신 것들을 따르기도 쉽지 않은데, 눈에 보이는 종교적 위엄에 마음이 빼앗겨 올무에 걸리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이미 실패한 것들에 대해, 무효화된 것에 대해 그 자취를 따르지 말라 명하시며 더욱이 그들이 섬기던 신들을 탐구하여 그들이 섬기던 방식을 연구하지 말라 명하신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는 발전해 왔는가 아니면 변질되어 왔는가? 소위 암흑 시대를 거치며 많은 것들이 타락했고 그에 대해 종교 개혁을 일으켜서 개신교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이미 콘스탄틴 때부터 성경과는 상관없는 많은 이교도적 요소들이 가미되었고, 이제는 그것들이 모두 성경적이며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소위 '드리는 예배'와 그 순서와 교회 건물의 구성 요소나 그 생김새들이 과연 성경적일까? 이제는 상관도 효과도 없는 구약의 여러 절기들에 대해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교회 안으로 계속 들어오는 세상적인 누룩의 요소들은 또 무엇들이 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마도 현재 기독교의 모습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을 듯 하다.
계시록 3장에는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기록한다. 물론 현재 개신교 특히 한국 개신교에는 살아 있는 이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복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살았다고 하지만 죽은 것이다. 그나마 남은 것 몇이 있어서 겨우 지탱하는 정도다. 그래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명하시고, 또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종교 개혁의 핵심은 '개혁'이며, 특히 계속되는 개혁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이 개혁은 벌써 500년이 지났다. 개혁이 영어로는 reformation 즉 모양을 바꾼다는 것인데, 나타나는 형태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내용과 정신이 더 중요하다. 500년이 지나면서 여러 형태의 reform은 있었지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그 원래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처음 것의 회복이며, 이것은 단지 500년전 개혁 정신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 성경과 그 기록된 대로의 실행으로 돌아가는 회복이다. 세상이나 교회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정신 못차리고 있고, 또 교회는 말도 안돼는 미혹케 하는 진화론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계속해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온전히 말씀으로 돌아가서 현재를 돌아보고 끊을 것을 끊고 남은 것을 굳건히 하는 것이 주의 백성이 해야할 일이다. 우리는 '이 모든 말을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기도 힘들다.
주님, 기독교는 이렇게 계속 가겠지만 그 가운데 주님의 종들을 일으키셔서 온전한 회복으로 나아가 이기는 자들을 얻으실 줄 믿습니다. 상황은 쉽지 않지만 여자가 사내 아이를 낳는 기간이 준비되어질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우리 가운데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