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이 만나 정착하는 장막, 그리스도 (신 16:13-22)

초막절에 관한 내용이다.  장막절 혹은 수장절 등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장'과 '막' 즉 텐트를 의미해서 과거 광야에서는 계속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장막에 살았지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는 모두 집을 짓고 살게 되었음에도 이 초막절을 지키는 칠일 동안에는 텐트에 살아야 하는 절기다.  레 23:43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하는데, 그래서 생명의 삶 해설은 광야 생활의 불편과 고난을 기억하는 절기로 설명했지만, 사실 이때는 추수 후 축제 기간이며 그 목적은 즐거워 하는 것이다 (14, 15절).  요즘도 캠핑을 즐겁게 하듯이, 과거에는 힘든 장막생활이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이 '초막 sukkah'이라는 말은 창 33: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에 처음 나오는데, '우릿간'으로 번역되었고, 그래서 그 가축을 위해 초막을 지은 곳을 숙곳이라 불렀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이 초막 혹은 장막은 안전, 거주, 동거 등을 의미하는데, '거하다'라는 말로 위 레 23:43 '거주하게 한'에는 yasab라는 말이 쓰였고, 비슷한 단어로 shakan 이라는 말도 있는데 '살다, 거주하다, 정착하다' 등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에 거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도 장막(tabernacle)에 거하셨는데 바로 성막이다.  다윗은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라고 대상 17:1에서 말하는데 바로 이 '휘장 아래'가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까지 계속 존재하던 성막이다.  

스가랴 14장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는데, 16절은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그리고 18-19절은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라고 기록한다.  왜 이방들이 초막절을 지켜야 할까? 

과거에는 성막이나 성전이 있었지만 이제 모두 파괴되고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데,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쓰여진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기록한다.  흥미롭게도 이 '거하다 skenoo'라는 원어는 '장막치다'의 의미인데, 과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장막에 거하셨던 것 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우리 안에 장막치신 분이시다.  그 안에 인성과 신성이 함께 하며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주님, 주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주와 합할 때 우리도 한 영 됨을 압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렵고 힘드는 일이지만, 주와 동행하며 동거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를 향한 예배, 경배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