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가 아닌 참소유와 만소유 (신 19:1-14)

오늘 말씀은 지난 4장의 도피성 내용과 겹치기 때문에 도피성에 대해서 보다는 다른 것을 좀 묵상해 본다.  지난 4장에는 요단 동편 지역에 세 성읍을, 그리고 여기에는 이제 가나안 땅에도 세 성읍을 구별해서 도피성으로 삼으라 말씀하시는데, 이 도피성들은 레위인에게 주어지는 48개 마을 중에 여섯이다 (민 35:6).  레위인들에게는 분깃이나 기업이 없지만, 그들에게도 살아가는 공간인 그들의 마을과 집과 텃밭은 허락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며 여호와만이 그들의 기업이 된다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소위 '무소유'를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주의 백성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은 청지기들로서 청렴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삶의 기본적인 요소를 누리며, 오히려 모든 것을 소유하게 하시는데, 1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라고 기록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민족을 멸절한 후에 그들이 살던 마을이나 가옥들을 헐고 불사르지 않고 그대로 거기서 살 수 있음을 말씀한다.  우상들과 다른 신들을 섬기던 그 일곱 족속들의 집에는 아무래도 그러한 이방적인 생활 양식이 속속 묻어 있을 텐데, 집들을 개조하거나 다시 지으라 명하시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살다보면 보수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기준에 의해 조금씩 모양이 바뀔 수 있겠지만 우선은 그대로 누리며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신약 시대에 와서 더 이상 율법의 여러 조문들을 문자 그대로 따를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게 된 우리에게 성경은 금욕주의나 무소유를 말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만유를 소유하신 그리스도의 권속으로서 우리 또한 만유를 소유했음을 말한다.  마 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그리고 25:14에도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기록하는데, 우리는 우리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맡은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속된 것들을 따르며 거기에서 오는 쾌락을 좇음으로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의미있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영적인 것에서 참된 만족을 얻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신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마 6:32), 우리가 먼저 주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들이 더해질 것을 말씀한다 (마 6:33, 개정).  우리가 구할 때 후히 주시고 (눅 6:38, 딤전 6:17, 약 1:5),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다 받게 하시며 (마 18:19, 마 21:22, 요 15:7, 요일 5:15, 롬 8:32),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했고 (고후 6:10, 9:8),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 4:13).  주님께서는 눅 14:33에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다고 거지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기 때문이다 (히 10:34).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해도 그 내용들이 거짓되고 더럽고 가치 없거나 혹은 얼마 가지 못하는 것들이라면 안가진 것만 못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 즉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 (히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