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고 집중하며 체계를 갖춤 (신 20:1-9)
전쟁에 임할 때 필요한 것은 먼저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나 싸움은 가능한 피해야 하겠지만 부득불 싸워야 한다면 소위 지피지기가 필요한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러한 병법 보다는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1절)' 우선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워하면 자신의 힘이나 계략도 제대로 써 볼 수 없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절).
그런데 5절부터 8절까지는 앞선 내용과는 반대의 것을 말씀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전사하면'이라고 기록하는데, 분명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전사하면' 이라는 불길한 말씀을 한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도 현실적으로 전쟁을 하면서 사상자가 전무할 수는 없지만, 사실 이 구절들의 의미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누가 죽을 것이라는 흉조를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 전쟁에 온전히 임하는데에 방해가 될만한 상황에 있는 이들은 참여하지 말라는 의미다.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주는 것도 물론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있음에도 온전히 싸움에 집중할 수 있다면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적들의 수가 많거나 우리의 수가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여호와를 의지하며 준비되어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역사적으로도 큰 수의 군대가 우왕좌왕하다 서로를 죽이거나 한데 몰려 움직임이 둔해져서 몰살된 경우가 적지 않다.
5절의 '책임자들'로 번역된 단어와 9절의 '지휘관들'은 원어로 shoter라는 같은 단어인데 '장교, 군관, 관리' 등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용기를 주지만,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는 이들은 이러한 shoter들이다. 두려워 말고 집중하는 각자의 마음 상태가 기본이지만, 이러한 체계도 전쟁에는 매우 막중한데, 지휘가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계급이 없지만, 섬기는 목사(목자 및 교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다. 이들 모두가 하나 되어 체계적으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주님의 모든 은혜를 누리며 즐거워하는 유람선인 동시에, 적과 싸우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는 군병이며 전함이다.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더욱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눅 9:59-61에는 여러 필요한 상황이나 이유로 먼저 자신의 일들을 보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이들에 대해 62절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왕국을 섬기기 원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에 묶이는 이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역에는 참여할 수 없다. 이것은 전시간 사역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 우선 순위에 따르기 때문인데, 전시간 사역자들이라도 일에만 메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일을 하지만 모든 일에 주님과 동행하기를 배우며 주님의 것을 우선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주님, 정상적인 세상 일에 종사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과연 진정한 주님의 일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안으로 믿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알고 매사에 주님께 집중하게 하소서. 승리는 오직 주님께서 인정하셔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