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됨 안에서 누리는 참되고 무한한 자유 (신 21:1-14)
1-9절의 내용은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경우에 대한 지침이다. 즉 이러한 사건에 대해 먼저 조사를 해서 그 행한 자를 찾아내어 공의로 판단한 후 합당한 벌을 선고해야 하지만,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살인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 살인자를 대신해서 암송아지가 희생을 당하며 그것은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제하기 위함이다 (9절). 즉 동양의 사후 개념에 입각하여 혼백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 대해 그 피 흘린 죄를 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시에 공동체적 참여가 있는데, 한 사람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그 책임을 공동체로서 져야 함을 말하며 그로서 그 죄에 대해 자유해진다. 8절에는 '사하다 kaphar'라는 단어가 두 번 그리고 '속량 padah'라는 단어가 한 번 나오는데, 한 구절 안에 이렇게 죄 사함에 관한 말들이 세번이나 등장한다. 사고든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죄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의지하여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해야 한다.
10-14절은 포로로 얻은 여자를 아내 삼는 것과 후에 혹시 그녀를 기뻐하지 않을 때 자유롭게 해줄 것을 말씀하는데, 그리스도의 속량이 이와 비슷하다. 엡 4:8은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라고 기록하는데, 우리는 과거 마귀에게 사로잡혔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주님께 사로잡혀 그 분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되어 과거 마귀의 종으로서 자유가 없었지만, 이제 그 분의 권속이 되고 나아가서 신부가 됨으로 그 분의 모든 것을 공유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함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주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다시 씻습니다. 우리를 사로잡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묶으심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