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얻어 거룩한 백성이 됨 (신 23:1-14)

1-6절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에 대해 기록하며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본인들에 대해, '사생자'는 본인 및 자손 십 대까지, 암몬과 모압 그리고 후손들은 영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총회'라는 말은 '모임, 무리' 등을 의미하는데, 영어로 assembly 혹은 convocation으로 번역이 되어 신약의 교회 ekklesia와 흡사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여호와의 총회 (비크할 야웨)'는 구약에 이 신명기 23장과 미가 2:5에 잠간 언급되고, 느헤미야 13장에는 바로 이 신명기 말씀을 읽으며 그대로 행하여, 3절은 '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고 기록하는데, 여기 모임은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이었다.  흥미롭게도 에스라서에서 이미 성전이 재건되었지만 성벽이 재건되기 전에는 제사를 올리지 못하고 성벽 재건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갖춘 제사가 이루어졌다.

히브리어 카할 즉 모임이라는 말은 구약에 123번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지만, '여호와의 총회'라고 기록된 곳은 이렇게 매우 적다.  따라서 이러한 '총회'는 일반적인 모임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특히 선민으로서 제사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말한다.  이방인들에게도 성전에 그들에게 허락된 공간인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이는 7-8절의 기록처럼 에돔이나 애굽 사람들 조차 삼 대 후에는 들어올 수 있지만, 앞서 1-6절에 기록한대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고 우리는 찬송을 부르지만, 사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서 받으실 수는 없다.  사람은 먼저 회개해야 하며 주 앞에 겸손한 몸과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마치 생식기가 상해서 더 이상 생명을 산출할 수 없고, 아비가 없는 사생자와도 같고, 과거 주님과 주님의 왕국을 대적하던 원수의 자식이었지만, 주님의 긍휼하심과 그 십자가의 공로로 이제는 누구든 예수의 이름 안으로 믿어 아버지 앞에 담대히 올 수 있게 되었다.

요 10:9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또 행 2:21과 롬 10:13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고 기록한다.  우리의 육적 결함이나 출신 성분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 안에서 모두 용납되었고 단지 그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고 거룩한 백성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룩하게 그 앞에 행하는 소위 코람데오의 백성이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싸우는 군사들이다.  10-14절은 '진영'에 대해 기록하는데, 이 진영 (히 맠하네)은 특별히 전투지에 마련한 임시 주거 형태 즉 막사를 말한다.  전쟁에 임할 때 전략과 무기 또는 군인들의 사기 혹은 명령 체계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그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들로서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  이 거룩함은 영적 거룩함과 더불어 일상의 정결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거룩함만을 추구한다고 일상의 여러 청결함을 무시하지 않는다.

주님, 이제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고 거룩함을 좇는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항상 주 앞에 거룩함과 청결함을 지키는 아름다운 회복의 모습을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