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왕국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적용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 (신 23:15-25)

오늘 말씀은 매우 많은 것들을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은 과거 땅 위의 유일한 하나님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것들이었는데, 따라서 그 원칙은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15절 주인을 피하여 도망온 종에 대해 선대할 것을 말씀하는데, 이 '피하여.. 도망하'다는 말은 natsal로 '구출하다'의 의미가 있다.  즉 종이 일하기 싫어서 도망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압제를 피해서 자신을 구출한 케이스다.  원래 종들은 이방인 중에서 사오고, 혹시라도 동족간에 종으로 팔리면 선대할 것과 속량의 기회를 줄 것과 희년에는 모두 풀려날 것도 말씀하셨는데 (레 25장), 혹시 이방인 종들이라도 압제를 받으면 이렇게 구출할 것을 명하신다.

17절은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또 남자 중에는 남창이 있지 말것을 말씀하는데, 그 땅의 이방인들 중에는 이러한 것이 허락된 것을 의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계속 그 '땅'을 거룩하게 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민족은 물론이지만 그 이스라엘 땅 안에서는 이렇게 성적 문란을 금할 것을 의미하는데, 17절 '창기'는 여성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격이며 18절의 '창기'는 '음행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흥미로운 것은 17절 '남창'이라는 말은 앞서 '창기 qedeshah'라는 여성명사의 남성격 qadesh로 소위 '신전 남창'을 의미하는데, 과거 여러 이민족이 우상들을 섬기던 여러 신전에는 다산을 기원하며 사제들과 신전 매춘부들 등에 의해 음행이 흥행했었다.  이러한 악습은 이스라엘에서 제거되며 금지되어야 했는데, 이러한 창기와 남창들의 음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일들은 비밀리에 행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여러 매개체를 통해서 매순간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들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눈이 그들을 좇는 것은 절제할 수 있다.

이자에 대한 지침도 말씀하는데, 이자는 자본주의의 꽃이며 이자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동족간에 이자를 받는 것은 금지되었고 다만 타민족에게서는 가능했다.  따라서 어쩌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반반씩 존재하는 모습인데, 하나님의 왕국은 돈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호한 기준으로 평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경외하고 사람 또한 사랑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끊임없이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호와 앞에 자발적으로 여러 가지에 대해 서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서원은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것들이 있는가 하면 또한 공개적이고 대외적인 것들도 있다.  개인적이든 아니면 공개적이든간에 그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께 서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원은 자신과의 약속보다 더 엄중한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서원하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한나의 경우를 보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면하는 동시에 하나님께 드림을 말하고 있다.  서원은 나의 필요에 대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 목적이다.  개역개정은 23절을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번역해서 마치 서원에는 물질이 필요한 것으로 오역했지만, 원어에는 '예물'이라는 단어가 없고 다만 '입으로 약속한 그것'으로 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자원해서 서원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것 조차 놀랍고 감사한 것이다.

동족의 포도원이나 밭에서 그 결실을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한하며 그릇으로 가져오거나 낫을 대는 행위는 금했다.  한 사람이 밭에 들어가 잠간 시장기를 채우는 것은 문제 없지만 그 이상이면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 조차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며, 정말 몹시 시장하거나 혹은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난한 이들이 정말 무능해서 그들을 찾아감으로 능동적인 구제도 필요하지만, 그들도 이렇게 손수 한끼 정도 해결하는 노동을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묵언의 도움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유지된다.

주님, 우리의 삶의 기준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왕국임을 압니다.  넉넉하게 주시는 모든 것들을 감사하며 서로 나눌 때 더욱 풍성함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