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때문에 (신 24:14-22)

계속해서 여러 내용들이 이어진다.  먼저 일꾼들 특히 불쌍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인데, 이스라엘 백성이든 요즘 말하는 외노자이든 학대(원어 압제)하지 말고 15절은 그 품삯을 당일에 줘야할 것을 말씀한다.  즉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하루 품삯을 받지 못하면 굶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소한 배려이다.  따라서 좌파들의 논리대로 불체자들이나 조건이 맞지 않는 이들 모두에게 인권을 명목으로 필요 이상의 혜택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내리신 명령이기 때문에 성경을 무시하는 이들이 인용할 만한 대목은 아니다.  만일 이러한 말씀을 모두 따르려면 대한민국은 기독교 혹은 유대교를 국교로 삼아야 한다.

16절은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기록하는데, 결국 사람은 자신의 죄(단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것은 소위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 즉 소위 원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17-22절의 내용은 소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씀하는데, 이것 역시 배려이지 그러한 약자들이 아무 일도 안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데 잘먹고 잘살게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도와주며 배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  돈을 찍어내는 미국 조차도 이러한 사회 보장이 악용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이유는 18, 22절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 자신들의 힘들었던 삶을 기억하는 것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 (18절)'을 기억하는,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 근본적인 이유임을 알 수 있다.  소위 '인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진화론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주님, 주님만이 근원이시고 해답이십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도 이유도 능력도 없음을 압니다.  다만 주님께서 계시기에 우리가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눈이 가는 곳에 우리의 눈길도 가게 하소서.  지금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여주소서.  우리가 서로 섬기며 나누며 주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