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지키려면 율법의 모든 조항 역시 지켜야 함 (신 26:12-19)

십일조를 하는 것은 과거 이스라엘의 의무였는데, 특히 매 삼년 마다 드려지는 십일조의 목적은 레위인들과 객과 고아와 과부 즉 아무런 기업이 없고 따라서 소득의 원천이 없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이것을 오늘에 '온전히' 적용하려면 국가에는 세금을 내지 말고, 모든 교회에는 11명 당 1명의 목회자 혹은 스태프를 두어야 하며 객이나 고아나 과부들에게 헌금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교회, 특히 이방인들이 십일조에 대한 의무가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말씀은 행 15:20과 29절에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할 것 즉 이방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 자유하지만 이 네 가지는 보편적인 사항이기에 멀리할 것을 결정했다.  따라서 여기에는 십일조 의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며, 유대인들 조차 성전이 파괴되거나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을 때는 십일조 역시 그쳤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십일조를 아직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독촉하게 하여 교인들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만드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에는 매달 지불해야 할 것이 없었다.  동족간에는 이자도 없었고, 집은 기본적으로 주어지거나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만들었을 것이기에 월세도 없었고 기본적인 음식 외에는 돈 들어갈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매달 들어가야 할 돈이 많기 때문에 십일조를 세금 전이냐 후냐 얘기하는 것 조차 의미가 없다.  삶의 규모에 따라 분수대로 감사함으로 자기의 바칠 것을 기쁨으로 바치면 된다(고후 9:7).

사도행전 15장에서 사도들이 결정한 내용에 대해 10절은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리고 19절은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또 28절은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라고 하며 20절과 29절의 결론을 맺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율법을 포함한 이 십일조 명령이 사실은 능히 메지 못하던 것이었다.

요즘 계시록에서 기록된 짐승의 숫자 666과 베리칩의 관계에 대해서 교파에 따라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소위 '오직 믿음'이라는 성경에 있지도 않은 말로 (개역개정에는 몇 있지만 원어에는 없음*) 베리칩 혹은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휴거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사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없고 '믿음으로만' 이라는 말이 약 2:24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오히려 행위가 필요함을 선포한다.  만일 '오직 믿음'이라면 십일조는 물론이고 어떤 행위도 필요 없다. 베리칩 혹은 앞으로 있게 될 짐승의 표에 대해서는 행위에 대해 관대하면서 십일조에 대해서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혹자는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현재 운영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며 따라서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하여 운영하면 될 것이다.

주님, 물질은 온전히 주와 형제를 섬기는데 쓸 수 있는 믿음 주소서.  물질을 우리의 신으로 두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임을 압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혹은 목회자들이 이에 대해 철저한 반성이 있게 하소서.  저도 물질에 소망을 두거나 물질을 사모하고 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그치며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섬길 수 있는 더 나은 믿음 허락하소서.

* 롬 3:27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기록하는데 여기 '오직'은 '다만 but, alla' 로 되어 있어서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