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의 양면성 (신 27:11-26)
오늘 말씀은 후에 여호수아 8장에 행해지는데, 수 8:33-35은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여기 27장에는 저주의 말씀만 기록되있지만 여호수아는 레위인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과 저주의 말씀 모두를 낭독하게 했다.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는 명령은 이미 11장 29절에 나오는데 이제 이 27장에는 어떤 지파들이 각 산에 설 것을 기록한다. 레위 지파는 그들 중간에 서서 낭독하는 제사장 무리를 제외하고 축복하는 산인 그리심 산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 포함)과 베냐민 지파들과 함께 선다. 그리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 지파는 저주를 위해 에발산에 선다.
이들이 어떤 기준으로 나뉘었는지, 그리고 축복이나 저주를 '선포'하기 위함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선포는 제사장들이 낭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15절 이하 계속해서 백성은 아멘할지니라 고 기록하는 것을 보아 아멘으로 화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난 신 11:26은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말씀하며 주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면 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을 말씀했기 때문에 축복과 저주를 위해 지파들이 양분된 기준보다는 그들이 주의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냐가 더욱 중요하다.
15절부터 계속 저주의 말씀이 낭독되는데, 생명의 삶 해설은 축복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쉽기에 기록에서 제외됐다고 해석하지만 사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라는 말씀은 축복과 저주는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음을 말한다. 계속되는 말씀은 마치 십계명의 저주판 같다는 인상을 받는데, 십계명이 명령이며 언약임을 생각할 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복이지만, 반대로 그 계명들을 뒤집으면 15-29절의 내용이 된다. 복과 저주가 동시에 앞에 있고 그 차이는 종이 한장 같아 보이지만 그 끝은 완전히 다르다. 계명을 순종하여 지키면 복이고 그 끝은 영생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저주이고 그 끝은 불못이다.
주님, 미지근함에서 구원하소서. 주님을 향해 복의 말씀으로 뜨겁게 하소서. 고난의 시간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회개가 퍼져 나감을 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