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함 (신 31:19-29)
모든 것이 부족했던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풍족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먹고 배불러서 살이찌게 될 때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어길 것이라 말씀한다 (20절).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이 개인이나 국가의 믿음을 보장하지 못하는데, 정말 먹고 살기 힘든 때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만, 정작 원하는 물질의 풍족이나 부를 이루면 하나님 보다는 편안함과 쾌락을 더 추구하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 보다는 이방 신들의 모습이나 그들이 표방하는 쾌락주의를 더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타락한 본성 때문에 그들에게 증거가 될만한 말씀을 노래로 만들라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는데,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피할 수 없이 타락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가를 세울 땅이 필요하고, 그 땅은 지리적으로도 온 세상의 중심이며 길목이다. 더욱이 거기에는 성전이 세워진다. 구약의 경륜을 위해 그 땅은 필요하지만 그 땅을 차지한 순간 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나태에 빠지게 되며 결국 여호와를 버릴 것이며 종교의 탈만 남을 것이다.
영적인 노래나 교훈이 사람에게 힘과 생명을 주어야 하지만 모세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재앙을 말한다. 이것이 모세와 그의 율법의 한계이다. 갈 3:13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라고 하는데, 율법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는 결국 재앙이며 저주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율법은 '육신'에 속한 것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율법의 한계였다. 하지만 롬 10:4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기록하며 바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시며 해결하셨음을 증거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주님, 율법으로는 재앙이 예견되었음을 보며 여기에서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을 봅니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시고 그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