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나와 다투시는 구원의 하나님 (신 32:15-36)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데, 이방을 그 도구로 쓰신다.  하지만 이방이 그 쓰임 받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능력이 많아서인 것으로 착각하여 교만해지면 그들 역시 패망하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구약의 방식인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 모든 저주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데 36절은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라고 기록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 '판단하시고'의 원어는 din이라는 말로 '심판하다'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변호하다, 방어하다, 다투다, 아뢰다' 등등의 의미로 쓰였다.  특히 이 단어가 제일 처음 등장한 곳은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에 '함께 하다'라고 번역된 부분인데, 영어로는 strive로 번역되었다.  즉 이 말은 저주를 하시든 사랑을 하시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표현이다.  육신으로 전락한 인류에 대해서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상관하시지 않고 분투하시지도 않으시지만, 그의 택하신 백성, 그리고 성령 안에서 거듭난 이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간섭하시고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이다.

모세가 지은 이 저주의 말씀은 모두 저주로 가득한 것 같지만 15절은 '구원'을 말하는데, 의롭게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여수룬은 그 구원을 발로 차고 업신여겼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시고 다투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여기 이 '구원'은 '예슈아'로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이다.  인류는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류를 위해 성육신 하셨고, 구원으로 오셨으며, 대속의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이셨다.

주님, 주님은 오늘도 나의 구원이십니다.  나의 힘이십니다.  저주의 말씀 가운데에도 주님의 사랑과 말할 수 없는 관심이 숨어 있음을 봅니다.  주는 나의 구원의 반석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