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라는 단어는 매우 오용되고 오해되는 말들 중에 하나다.
우선 구약의 성전은 단 하나였고, 신약 시대로 넘어 오면서 성전은 '우리들' 이라고 바울은 말씀한다 (고전 3:16). 헛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몸'이 성전이 아니라, '너희 (복수)' 즉 주님을 모시는 '교회'가 이제는 참된 성전인데, 이 '교회'라는 단어 역시 많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고전 6:19의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기록한 것은 원어로 '너희들의 그 몸' 즉 정관사가 앞에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요한이 요 2:21에서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한 것과 연결되는데, 이 '육체'로 번역한 단어는 soma로 동일하게 '몸'을 의미하며 이 역시 앞에 정관사가 붙는다. 즉 구약 시대에 성전이 하나였던 것 처럼, 신약 시대 역시 성전은 단 하나 즉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다. 물론 우리 몸을 거룩히 구분해서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성전이 원래 하나인 것 처럼, 우리 각자의 몸을 성전이라 일컬을 수는 없다.
그러면 성전의 주된 기능은 무엇일까? 얼핏 생각에는 구약 시대에 제사가 그 주된 기능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대하 6장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드린 기도를 보면 사실은 '기도'가 그 주된 기능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기도하는 집 (마 21:13)'이라 말씀하셨다. 사실 주님 시대에 성전에서 행해지는 제사는 그 순수성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죄를 없게하지 못했다 (히 10: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단번에 죄를 없게 하실 참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다.
역대하 6장에 '제사'라는 말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 반면, '기도'라는 말은 11번이나 나오며, 원어에는 15번까지 나온다. 주님께서 요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그(분)을 영과 참 안에서 예배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전에 21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사마리아에 있는 산에서도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즉 성전 조차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제는 '영과 참 안'에서 영이신 하나님께 '절'해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정관사 없는 '영과 진리 안' 즉 우리가 알기 어려운 모든 것의 근원인 영 안에서, 그리고 '참' 즉 '진리'로 많이 번역됐지만 원어 aletheia는 '참, 현실, 실재' 즉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신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영번역본들이 in spirit and in truth라고 in을 두번 썼지만, 원어에는 'en'이라는 전치사가 영 즉 pneuma 앞에만 있고 aletheia 앞에는 없다. 물론 문법적으로 생략이 가능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이라는 말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은 사실 하나임을 말씀하는 것 같다. 영과 현실은 아예 다른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지만, 영이 참된 '실재'임을 알 때, 이 둘은 하나이며, 그래서 pneuma kai aletheia라고 하신 것 같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그 안에서 여러 것들을 하지만 (고전 14:26)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또한 우리의 '그 몸'이며, 주님을 모시는 참된 성전으로서 함께 '기도'하는 유기체이다. 그러한 유기체는 각 지체가 자신의 삶 속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그 영과 실재 안에서 '예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