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파에 요구되는 가치있는 마지막을 섬긴 한 여자의 허비 (막 14:1-11)
무엇이든 비싸고 값진 것은 사용된 재료도 좋지만 소위 '끝마무리'를 제대로 정성들여 한 것이다. 최상의 재료로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많은 끝맺음'을 한 것이 가치있게 되는데, 3절 '값진'으로 번역된 말은 '폴루텔레이스'로서 '많다'를 의미하는 '폴루스'와 '끝' 혹은 '마침(계 22:13)'을 의미하는 '텔로스'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유독 이 마가가 기록한 향유 사건과 딤전 2:9 그리고 벧전 3:4에만 쓰였고, 비슷한 경우지만 시몬의 집이 아니라 마리아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했던 요한 12:3에는 '폴루티모스' 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그 의미는 '많은 영예' 혹은 '많은 가치' 등 이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항상 시간을 가치있게 쓰셨지만, 죽으시기 마지막 한주간 동안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한 많은 말씀이 기록된다. 주님은 시작만 특별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과정도 투철하셨고, 마지막까지 '많은 끝맺음' 즉 '값진' 삶을 사셨다. 이에 대해 이 한 여자는 자신의 결혼에 쓰기 위해 준비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의 머리에 붓는다.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을 운운하며 분을 내어 그 여자를 책망하자 주님께서는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매우 길게 설명하시며 답하시고 또한 명하신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화를 내며 여자를 책망했던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도 아니었던 향유가 쓰인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비판한다. 정작 자신들은 주님의 마지막을 값지게는 커녕 배반하고 떠나갈 것인데, 향유가 '허비'되었다고 아까와 한다. 이 '허비'라는 말은 '멸망'과 동일한 말이고, 원어는 '멸망으로 되었는가?'의 즉 '왜 못쓰게 되게 했는가?'라는 뜻이다. 어차피 향유 옥합은 언젠가는 무엇을 위해서든 깨어질 것이지만 주님께 부어지는 것은 못쓰게 되어 아깝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달랐다. 그 여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허비가 아니라 '값진'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지만, 그 이전에 여기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라고 하신다. 믿는 이들이 기억하라고 명함 받은 여인은 주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 바로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허비'했던 이 이름 모를 여인이다.
복음은 주님으로 시작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따르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에는 이러한 '허비'가 요구된다. 자신의 시간이나 물질이나 감정이나 어떤 관계 혹은 삶 전체를 '허비'하게 될 수도 있다. 복음은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라는 값싼 외침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러한 값진 것에 대한, 자신의 삶과 목숨을 기꺼이 내려 놓을 것을 요구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반드시 선행된다. 그러한 것이 없다면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단지 사탕 발림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 주님의 피가 결부된 매우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목숨이라는 값진 향유가 있음에도 그 향유를 한번에 깨지 못하고 찔금찔금 흘리는 것은 아마도 주님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맺기 위해서는 이러한 '많은 마무리'를 하는 것이 필요함을 압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가치를 보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