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친밀하기 (막 14:12-21)
예전에 어느 누가 '나는 하나님이랑 친해' 라고 농담하듯 얘기한 것을 들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는데, 정말 하나님과 친했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매우 불행한 일이겠다. 사실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닌데, 헬라어 '호 떼우스'는 절대적이며 신비스러운 '신격'을 의미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하면 세상 어디에나 있는 'gods'라는 말이 되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기는데, 구원은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14절 '객실'로 번역된 단어는 '카탈루마'로 그 어원은 καταλύω이며 이는 '카타 (밑으로, 통해서, 향해서, 옆에서)'와 'ㄹ루오 (풀다, 쉬다, 파하다, 훼손하다, 파괴하다)'의 합성어이다. 여행자가 여행을 끝내고 잠간 짐과 옷을 풀고 쉬는 것 혹은 장소를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맞으시며 이제 3년 반 공생애에서 잠간 휴식을 취하신다. 15절에는 '큰 방 (아노게온 메가, 큰 윗방)'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절기가 유월절이라 이러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마련된다.
18절에는 '너희 중 하나 나와 먹고 있는 그 자가 나를 배반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 배반자는 어디 멀리 있는 자가 아니라 매우 가까운, 지금 주님과 함께 먹고 있는 자들 중 하나이다. 이 '배반'이라는 단어가 매우 독특한데, '파라디도미' 즉 흥미롭게도 '주다'를 의미하는 '디도미'에 'kata'가 아니라 'para'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만일 '대적하여, 옆에서, 밑으로, 밑으로 부터' 등등을 의미하는 '카타'였다면 이해가 가지만, '옆에, ~로부터 함께'를 의미하는 '파라'가 쓰인 것이 충격적이다. 생각해 보면 '배반'이라는 말은 적이나 원수에 대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매우 친밀하고 친구같은 이가 돌아설 때 쓰는 말이다. 배반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빵을 함께 먹고 있는 자가 한다.
20절 '손을 넣는' 이라고 했지만 원어에 '손'은 없다. 영어로 dip in 즉 빵에 소스 등을 찍어 먹는 표현으로 요 13:26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즉 '적셔다'로 번역되었다. 당시 빵을 먹을 때 대접에 소스나 꿀 등을 담아 서로 찍어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때는 서로의 침이 섞이게 되어 매우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함께 먹지 못한다. 주님께서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의미다.
그런데 이렇게 매우 친밀한 그것도 열 둘 중 하나가 주님을 배반한다. 다시 말해 '배반'은 친밀한 이들 가운데 발생하는데, 소위 '주의 종'이라고 모두 끝까지 충성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소위 '이단'으로 빠진다. 이에 대해 요일 2:19에는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라고 기록한다. 또 교리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행정면이나 생활면에서 이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변질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은 다시 위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주님, 주님의 모든 것을 보며 체험하며 배웠던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반한 것을 봅니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저도 주님을 언제라도 배반할 수 있음을 압니다. 단지 친밀함에 끝나지 않고 주의 영 안에서 온전히 변화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