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먹고 사는 문제 (막 14:22-26)
인생의 기본은 먹고 사는 것에 있다. 의식주라고 말은 하지만 먹는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 14절은 '그들이 먹을 때에'라고 시작하는데, 원어에서는 '그리고 그들의 먹고 있는 (중에)'로 되어 있다. 공관 복음 모두에 기록된 소위 '성찬식'을 하신 때는 식사 시간 도중이었다. 주님께서는 '우선 거룩한 성찬을 먼저 하고 밥(빵)을 먹자' 라거나 혹은 식사를 다 마치시고 '이제 다 먹었으니 성찬을 하자' 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식사 도중에 이 특별한 일을 하신다. 개정역 눅 22:20에는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라고 해서 마치 만찬을 끝내고 언약의 잔을 돌리신 것 같이 번역했는데, 이 구절은 고전 11:25에도 완전히 동일하게 쓰였고 한글 여러 번역본들이나 영번역들 조차 '후에'라고 많이 번역했다. 하지만 '후에'로 번역된 'μετά'는 '후'라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도중에'의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마 1:23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에도 이 '메타'가 쓰였다. 이것은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이상한 의미가 된다. 즉 시간적으로 거의 동시에 따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눅 22:19에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시고, 고전 11:25에는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는데, '행하여'와 '마시다'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즉 앞으로도 계속하고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동물처럼 먹기만을 위해 살지는 않지만, 살기 위해 즉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어도 결국은 죽게 된다.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의 살과 피를 마시면 진정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데, 요 6:57은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58절도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기록한다. 원어로는 '나를 씹어 먹고 있는 자 (현재진행)' 그리고 '살것이다 (미래형)'으로 되어 있다.
'새 언약'은 '피'의 언약이며, '왕국'의 언약이고, 이것은 새로운 '삶'이며 주님의 만찬을 통해 체험되어진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만찬 혹은 성찬은 어떤가? 모든 믿는 이들의 가정에서 매일하는 식사는 그냥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만찬이 되어 진정한 생명을 얻는, 그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이 주님 주신 혹은 주님 자신이 되어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음식의 영양으로 살지 않고 주님 주시는 생명되신 주님 자신으로 산다.
주님, 고맙습니다. 주님은 정말 참된 양식이시고 참된 음료십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정말 우리 삶 우리 가정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매일 하루 식사가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 주님을 먹고 주님을 누리는 시간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