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혹은 부인 그 후 (막 14)
신약 장들 중에 가장 긴 장은 누가복음 1장이지만, 마태복음 26장도 75절까지 있고, 같은 내용의 마가복음 14장 역시 72절, 그리고 동일한 내용의 눅 22와 요 18장도 짧지 않다. 주님께서 잡히시고 배반당하시는 내용이 모두 기록되었는데, 특히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었다.
베드로는 소위 수제자로 분명 회개했고 주님께 부름받고 쓰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가 세번 부인할 것을 미리 아셨고, 닭이 우는 것이 그것을 알려 줄 것이라 말씀하셨다. 한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기본적인 회개를 하는 것이고 다시 태어 나는 것이며 새로운 창조물이 된 것인데,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많은 실수를 범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큰 죄까지도 범하게 된다. 베드로가 주님을 저주하기 까지 하며 부인한 사건은 정말이지 결코 작지 않은 죄이다. 이러한 실수나 실족이 아예 없으면 정말 좋겠지만 종종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것을 보거나 개인적으로도 실수를 범하는 것을 경험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일을 행한 후에 어떻게 하는가에 있다.
마태, 마가, 요한 복음의 경우 단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닭이 울 때 통곡했던 것만 기록했지만, 누가복음은 그 후의 일에 대해 말씀한다. 22:32절은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원어에는 '기도하였노니'가 '구하다'이며 아오리스트에 수동태로 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셨는데, 이에 대해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결과가 있다.
주님의 제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배반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번역의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처럼 '늘 배반'할 수는 없는데, 이 '돌이킨 후에'라는 부분에는 '후에'가 아니라 '포테 (전에, 언젠가, 한번, 일단)'라는 말이 있어서 배반 혹은 부인 후에도 돌이킬 것을 말씀하며, 거기에 자신의 믿음 뿐만 아니라 '형제들' 역시 굳건히 하라고 명하신다. 여기에 '굳게하라'는 아오리스트 시제로 주님의 사랑과 바람이 가득함을 볼 수 있다. 즉 이것은 명령이면서 바람이고 예상이다.
주님, 배반 혹은 부인했다고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돌이켜 형제들을 굳건히 하라셨던 부탁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늘 배반하지 않기 원합니다. 일단 돌이킬 때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들의 믿음도 굳건히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기 원합니다. 주의 부탁의 말씀으로 저희를 해방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