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회피하려는 무리들과 종교인들 및 정치인들에 의한 불법 판결 (막 15:1-15)
창세기는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린 후 몇번을 거듭해서 팔리고 나중에는 감옥에 까지 갇혔던 것을 기록한다. 주님 역시 몇번을 거듭해서 '넘겨 지셨'는데, '배반'이라고 번역된 말들과 1절, 10, 15절 '넘겨 주니' 그리고 '팔다'는 모두 헬라어 παραδίδωμι로 되어 있다. 지난 14장에는 10, 11절 '넘겨 주다', 그리고 18, 21, 41, 42, 44절 등에는 '팔다'로 번역되었는데, 먼저 가룟 유다가 주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 주고, 대제사장들로부터 온 수하들은 주님을 공회에 넘겨 주고, 공회는 오늘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 준다. 눅 23:7에는 빌라도가 헤롯에게도 넘겨 준 것을 기록하는데, 헤롯은 또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 준다.
왜 이들은 이렇게 주님을 계속 넘겨 주었을까? 책임을 돌리기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형 집행을 위해서는 합밥적 권한이나 정치적 권력이 필요했겠지만 정치권인 헤롯과 빌라도 역시 주님을 계속 넘겨 주다가 결국은 빌라도가 형을 집행하게 되는데, 빌라도 역시 마 27:24에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한다. 무리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정치인들이나 그 어느 누구 하나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13, 14, 15절에 '십자가에 못 박다'는 말이 나오는데, 원어에는 '못 박다'는 동사는 없고 단지 '십자가형을 하다'로 되어 있다. 신약 전체에 '못'이라는 단어는 단 요 20:25에만 나온다. 분명 주님께서는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부활 후에도 그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눅 24:39 요 20:25), 모든 십자가형이 손과 발에 못을 박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글 번역본에는 유일하게 '한글킹제임스'에서 '십자가에 처형하소서'로 번역되었다.)
십자가형은 정말로 악한 일을 행한 이들에게만 집행되던 가장 흉악한 사형 방식이었는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충동, 소요, 민란의 두려움 등을 이유로 삽시간에 일이 끝나버린다. 지난 몇년간 한국을 보는 것 같다...
주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 귀기울이기 원합니다. 주님도 억울함을 참으셨으니 삶 속에 억울한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어 놓게 하소서. 또한 나 자신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른 이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도록 주 앞에 겸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