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의 그 고통과 그 무게를 경험했던 단 한 사람 (막 15:16-23)

우선 18절 '평안할지어다'는 원어로 '기뻐하라 (카이레)'이다. 이 말을 로마 군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라틴식으로는 '만세'를 의미한다. 19절 '꿇어 절하더라'에서 '절하다'는 '프로스쿠네오'로 많은 경우 '경배하다' 혹은 '예배하다'로 번역된 말이다.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그냥 '절하다'로 통일되면 좋을 것이다. 20절 '십자가에 못 박다' 역시 '못 박다'는 말은 없고, 단지 '십자가형을 하다, 스타우로소신'이다.

만일 마가복음이 복음서 중 제일 처음 기록된 것이라면 15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부분이 매우 특이한데, 마태나 누가 처럼 그냥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 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두 사람은 당시 매우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롬 16:13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말하는데,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말하고 있다. 구레네 시몬은 명절 때 시골에서 방문했지만 '마침' 당시 로마 군사들의 눈에 띠어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운 사람이다.

지난 15절에는 바라바가 대신해서 놓임을 받은 것을 기록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이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것을 기록한다. 바라바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성경 기록만으로는 그 이후에 대해 알 수 없다. 그가 변해서 제자가 되었다면 좋겠지만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 그는 주님 대신 풀려난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수없이 듣고 수긍하는 이들 중에도 별다른 삶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은혜를 가벼이 여긴다.  은혜를 모른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 (마 10:24, 막 8:34, 눅 14:27)'을 말씀하셨는데, 다른 이들의 것이 아닌 단지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면 된다. 하지만 역사상 자신의 십자가가 아닌, 그것도 주님의 십자가를 진 사람은 바로 이 한 사람 구레네 시몬이었다. 그는 당시 그가 무엇을 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겠지만 후에는 매우 놀라고 그 인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의 그 고통과 그 무게를 경험했던 단 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고 그와 더불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다.

주님, 지금은 잘 알지 못하고 고통스럽지만 후에는 영광이 될 상황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시고 완전하게 되신 주님을 봅니다. 주 앞에 무릎꿇고 절하지만 실은 주님을 조롱하며 희롱했던 로마 군사들과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도 그 가운데 순종을 배우며 완전한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