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들리는 주님의 외치심 (막 15:33-47)
34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마 27:46에도 나오는데, 개정역에는 모두 동일하게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조금 다르다. 34절은 '엘로이 엘로이 람마 사박따니'로 '람마'는 히브리어지만 그 외는 아람어이고, 마27:46에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따니'로 '사박따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히브리어이다. 아마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태복음이라 히브리어를 더 많이 썼을 것이다.
이를 번역한 것도 약간은 다른데, 34절은 원어로 '나의 그 하나님(께서, 주격) 나의 그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에이스 티) 나를 버리시는가' 정도로 할 수 있지만, 마태복음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대체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정도가 되겠다. 즉 마태복음은 호격으로서 하나님을 부르지만 여기 34절은 혼자말로 외치시는 느낌이다. 마태복음은 '외쳐 부르다, 아네보에센'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는 그냥 '에보에센'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람어는 호격이 그리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호격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박따니'가 아람어라서 그 시제 역시 분명하지 않지만 마태나 마가나 모두 완료시제를 쓰지 않고 아오리스트를 썼다. 영번역본에는 모두 현재완료로 번역했는데,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때 완전히 버림받으시고 죽으셔야 세상 죄 문제가 영단번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버림 받으신 것은 다시 말해 '영단번'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오리스트 시제가 더 어울린다. 주님께서는 이때 단 한번 '아버지'와 분리가 되어 '하나님'으로 부르셨지만 이 때를 통해 구약과 신약은 갈렸고 그래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38절). 바로 우리의 구속이 시작되고 또한 동시에 완료된다 (엡 2:15, 벧전 3:18).
39절은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되어 있는데, 사본에 따라 '그분께서 이같이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가 있다. 마 27:54에는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이유에 대해 지진과 어두워짐 등 기적도 있지만, 마가는 주님께서 그렇게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고백한다. 이에 대해 누가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는데, 눅 23:47에는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라고 기록하며 '의인'을 더 부각시킨다. 누가는 주님의 인성에 대해 더 많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기록을 살펴보면 주님께서는 참으로 완전한 사람 또 온전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주님, 2천년 전 울려퍼진 짧은 그 몇마디 였지만 지금도 주님의 그 외치심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우리에게 들립니다. 우리는 먼 옛날 2천 년 전의 주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시고 옆에 계시며 또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엡 2:15, 킹흠정) 『원수 되게 하는 것 즉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화평을 이루려 하심이요,』
(벧전 3:18, 개정)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