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찾는 여인들의 사랑, 갈릴리로 보내시는 주님의 사랑 (막 16:1-8)

여인들은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주님이 누워계실 거라 생각했던 굴무덤에 이른 아침부터 찾아 간 것은 아니었다. 주님의 시신에 바르려고 향품을 산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당시 그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더우기 도착해서는 무덤을 막은 큰 돌을 누가 옮겨줄지 알 수도 없는, 즉 소망 역시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는데, 주님의 시신이라도 보려는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돌이 굴려진 즉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했고, 부활을 처음 목격함으로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짧은 이 구절들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 모든 것이 녹아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천사는 여인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말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할 것을 명한다. 7절의 '먼저 ~가다'로 번역된 단어는 '프로아고'로 '미리 가다'의 의미와 함께 '이끌다'의 뜻도 있는데, 주님께서 갈릴리로 제자들 보다 먼저 가시는 혹은 그들을 거기로 이끄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가지로 생각되는데, 하나는 처음 부르심을 받은 곳으로 이끄셔서 전혀 새롭게, 즉 부활 후의 새로운 시작 혹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약을 시작하시기 원하셨기 때문이고 이것은 그들에게 구약의 '엘벧엘 (창 35:7)'과 비슷하지만 보다 진전된 새로운 것이 된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다시 가야하지만, 그 이전에 다시 갈릴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역은 갈릴리로 시작하여 제자들 역시 갈릴리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갈릴리 혹은 나사렛은 같은 지역이고 (마 21:11, 막 1:9, 눅 1:26, 눅 2:4, 눅 2:39 등) 선지자가 날 수 없고 선한 것이 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요 7:52, 요 1:46) 믿음을 떠났던 옛 북이스라엘 지역 시골이었다.

(그런데 누가 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처음 열한 제자에게 보이신 곳은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24:33-36). 그리고 사본에 따라 '승천' 역시 누가복음에는 '베다니 앞'이다 (24:50-51). 그래서 아마도 누가복음은 '승천'이 아니라 그냥 그들을 '떠나'심을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승천'을 기록한 막 16:19에는 그 장소가 분명하지 않고, 행 1장에는 '감람산'으로 되어 있는데, 12절은 '그때에, 토테' 라고 시작해서제자들이 주님의 승천 후에 감람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기 때문에 승천이 감람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외 다른 여러 구절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승천의 정확한 장소는 알기 어려운데, 승천하신 산이 우상으로 변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마 28:16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라는 기록처럼, 전통적으로는 주님의 승천 장소가 예루살렘이라 여기지만 갈릴리일 수도 있고, 따라서 재림 역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도 가능함을 생각해 본다.  이것은 그들에게 소명을 새롭게 하는 것과 동시에 또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갈릴리로 부르시면서 베드로는 물론이고 다른 제자들이 모두 주님을 배반한 것에 대해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신다.  이것은 단지 전에 받은 소명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데,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더 이상 '제자들'로 부르시지 않고 '내 형제들' 이라고 부르시며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 20:17)'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갈릴리는 이제 더 이상 촌구석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 (계 11:8)'는 예루살렘 보다 더 나은 곳이 되었다. 주님은 우리를 이제 갈릴리로 부르신다.

주님, 믿음으로 받은 바 소명을 새롭게 하시며 재림에 대해 소망을 갖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을 위해 주님의 아가페를 소유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침체될 때 우리에게 돌아갈 갈릴리가 어디인지 알게 하소서. 지금은 심히 미약할지라도 약속하신 분은 주님이심을 알고 주의 말씀을 믿고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