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되는 이유 (막 16:9-20)
마태복음 28:19-20 주님의 명령에도 '가서'가 먼저 나오고 오늘 15절에도 원어에는 '가서'가 동일하게 있는데, 그것은 핵심 동사가 아니라 'verb particle (동사입자)'라고 하는 동사의 일부이다. 마 28:19의 핵심 동사는 '제자삼아라'이며 아오리스트 시제에 명령형이다. 여기 15절은 복음을 '선포하라'가 핵심 동사이며 역시 동일한 시제이다. '가라'는 동사입자는 아오리스트 시제지만 수동태로 되어 있다. 즉 우리가 가기는 하지만 가는 것은 먼저 보내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내심 없이는 갈 수 없기에 가라는 동사가 수동태여야 한다. 즉 가라는 명령이 핵심동사가 아니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보내심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며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한다.
가는 곳은 '그 온 세상 안으로' 인데, 그 대상은 '그 모든 피조물'이다. 이 구절을 들어 개들에게도 복음을 말하고 세례를 준다는 교회도 있다는데, 그러한 일은 '개 귀에 경읽기'다. 그 제한은 '그 믿고 침례당하는 (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먼저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 (16절).
흥미로운 것은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라는 부분이 있는데, 원어에는 '표적'은 복수인데 '따르다'는 단수로 되어 있다. 즉 이 '따르다'의 대상은 '표적들'이 아니라 그에 해당하는 단수인 '내 이름 안에'여야 한다. 그래서 '그런데 그 믿는 이들에게 이러한 표적들이 내 이름 안에 따를 것이다' 정도가 되는데, 표적이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기 보다는 '내 이름 안에'가 (주격이 아니지만) 함께 할 것에 더 강한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믿는 이들은 이러한 표적들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내 이름 안에'를 더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이다.
가게 되는 이유도 보내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고, 표적들이 나타나는 것도 주님의 이름 안에서 라는 조건과 안배가 따르기 때문이다.
주님, 제 생각과 계획 안에 있으려는 제 자신을 구원하시고 오늘 주의 이름 안에 있게 하소서. 표적들을 구하지 않습니다. 따르시는 주님의 이름 만을 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