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열매는 없고 폐기처분된 교리만 남은 종교인들을 고발함 (딛 1:10-16)
9절까지 감독의 자격을 말한 바울은 10절에 흥미로운 말을 하는데,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과 헛된 말을 하(는 자들) 그리고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할례 출신의 그들이다 (원어참조)' 라고 기록한다. 초기 교회에는 아무래도 유대교에서 들어온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은 할례를 받은 이들이었는데, 이러한 구약의 낡은 것을 자랑삼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근히 무시하였으며, 육신의 표식을 자랑삼았지만 그 삶은 형편없던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들에 대해 감독 삼을 것을 조심하라는 의미다. 말주변이 좋다고 혹은 남들보다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사회적으로 조금 더 높은 계층에 있다고, 더우기 종교성이 많다고 감독을 시키면 안된다는 것이다.
11절은 더욱 강한 조로 말하는데 '그들은 반드시 입 막음 해야 한다 그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가르쳐서는 반드시 (절대) 안 될 것들을 가르치며 온 집들을 뒤엎고 있다' 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디도는 헬라인이기 때문에 바울이 다른 곳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디도서에는 종종 나오는 것을 본다. '입막음 (에피스토미조)' '더러운 (아이스크로)' 등 몇 가지가 더 나온다. ('이익을 얻으려고' 부분에 '~를 위하여' 혹은 '대신하여'를 의미하는 '카린'이 있는데, 이것은 '카리스 (은혜)'에서 나온 말이고 엡 3:1,3절 두곳과 몇몇 구절에 나오지만 디도서에도 5절과 여기 11절에 나온다)
12절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나온 그들의 선지자가 말하기를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들 악한 짐승들 게으른 배들(이다 라고 하다)' 라고 하며 이러한 평은 바울이 그레데인들을 이유없이 비방하거나 조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자신들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고 있음을 예를 든다.
13절-14은 '이 증언이 진실되다. 이러한 이유를 통해 그들을 신랄하게 꾸짖고 있으라 (혹은 드러내고 있으라) 그럼으로 그 믿음 안에서 (그들이) 건전한 자가 되어 유대인들의 신화들 그리고 그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도록' 이라고 하는데, 꾸짖거나 혹은 드러내는 일을 신랄하게 해야 하며 그 목적은 소위 할례당이 자랑하는 것의 허점과 헛됨이 드러나서 그 믿음 안에서 건전하게 되며 유대교의 가르침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다. 그레데인들은 이방인들이지만 그들 중에도 유대교로 개종하여 할례 받은 이들이 있는데, 그러한 종교적 관습만 중요시하고 '그 진리'는 대적하는 전형적인 '종교인'들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15절은 '깨끗함 (깨끗한자들) 에게는 과연 모든 것이 깨끗하다 그런데 더러워지고 있는 (자들) 그리고 불신의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하지 않음 (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생각과 양심이 더러워졌다' 라고 한다. 더러워지고 있는 것과 불신을 함께 두고 있는데, 죄의 문제는 믿음에 있기 때문이다 (요 16:9). 유대교인들 즉 '종교인'들은 영적으로 부정한 자들인데, 이들은 이제는 철지나 폐기처분된 죽은 교리를 고집하지만 정작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특히 그 생각과 양심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깨끗하지 않고 또한 아무것도 그들에게 깨끗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을 그들은 보고 있다고 (그들은) 이구동성 말하고 있다 (호모ㄹ로구신) 그런데 행함들로는 무언되고 (아문타이, 아르네오마이 - a+reo) 있다 가증한 자들 그리고 설득되지 않는 (자들) 그리고 모든 선한 행함에 대해 무자격자들 (이다)' 라고 결론 짓는다.
주님, 조선놈들은 할 수 없어 혹은 죄인들로서는 안돼 라는 말을 듣습니다. 기독교가 단지 종교로만 끝난다면 우리는 그레데인들과 다를 바 없음을 봅니다. 이제는 의롭게 되었고 '한 새 사람' 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임을 보게 하소서. 받은 바 은혜가 넘침으로 정결하게 되어 행함의 열매를 맺는 우리들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