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니? (딛 2:9-15)
9-10절은 '종들'에게 하는 권면인데, 엡 6:9이나 골 4:1 처럼 상전들에게 하는 권면은 빠졌다. 사실 이 세상에서 상전만인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으로 생각하는데,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상전의 위치에 있다 해도 위로는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종들로서 상전에게 해야할 것은 '범사에 순종하'는 것과 '말대꾸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참된 복종의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10절에 '훔치지 말아라'로 번역된 νοσφίζω의 원의미는 '(자신을 위해) 따로 떼어놓다'를 뜻하며 따라서 '횡령하다'을 의미하는데, 여기와 행 5:2-3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서 쓰였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 중 얼마를 감추었고 그에 대해 베드로의 말처럼 자신의 것으로 무얼하든 상관없었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진정으로 자신의 소유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산물이고 돈과 더불어 특히 시간은 횡령하면 안될 것이다. 주님의 긍휼이 필요하다.
11절은 번역이 잘못돼어 있는데, 원어에 '모든 사람에게'는 목적격이 아니라 여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이 아니라 '킹제임스역 처럼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로 되어야 한다. 잘못 이해하면 만인구원론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인데,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는다. NIV역 조차도 킹제임스와 동일하게 번역되었는데, '우리말 성경' 역시 개정역 처럼 잘못 번역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는 없다. 딤전 2:4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하지만 살후 3:2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또한 말씀한다. 그래서 원어를 직역하면 '그 구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졌기 때문이다'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죄사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도 하는데, 킹제임스는 '가르치다'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παιδεύω로 '어린 아이를 훈육하다, 잘 타이르다'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은혜는 특히 처음 믿는 이들을 진리 안에서 성장하게 하는데,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 (12-13)'시고 또 이어서 14절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 특히 믿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것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의 신성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또 하나의 구절을 발견하는데, 13절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부분은 모두 소유격으로 되어 있는 매우 특이한 구절이다. 이 부분을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따로 놓을지 아니면 '우리의 크신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한데, 14절은 '그분 (단수)'로 시작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임을 말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데, 정말이지 거짓말장이들이던 그레데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그 인생의 비밀과 목적을 알고 난 후 그 은혜로 인해 양육받을 때 그리스도의 신성을 닮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4절은 결국 우리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임을 말한다. '자기'로 번역된 단어는 περιούσιος로 '페리'와 '에이미'의 합성어인데, 즉 '에고 에이미'이신 주님 만의 백성 즉 특별한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15절은 명령어가 4개나 있는 매우 강력한 구절인데, '말하고 있으라' '권면하고 있으라' '드러내고 있으라'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있으라'로 모두 현재진행형 능동태이다. 이러한 일이 소위 목회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주님, 종교 생활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거라 종종 오해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양육받아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고 주님이 누구신지 더욱 알아가며 주님께서 받으실만한 선한 행실의 열매를 내는 특별한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의미와 가치임을 배웁니다. 우리가 삶 자체를 즐겨보려는 시도에서 돌이켜서 먼저 주님만을 즐기기 (enjoy) 하기 원합니다.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