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완성의 목적인 하나님의 백성 (히 4:1-11)
신약에서 '안식' 혹은 '안식일'로 번역된 단어는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샤바트' 즉 '안식(일)' 이지만 행 7: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의 구절과 히브리서 3장과 4장에 나오는 '안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κατάπαυσις 인데, κατά와 παύω의 합성어이다. 특히 παύω는 영어 pause 즉 '멈춤 혹은 그침 cease'을 의미한다. 이것은 '샤바트'의 원의미와 동일하다.
명사형과 동사형을 합해서 13번 기록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둘 모두가 히브리서 그것도 지난 3장에서 두번 그리고 4장에서만 8번 총 10번이나 빈번하게 등장한다. 히브리서 특히 11장은 소위 '믿음장'이라고 하지만 4장은 가히 '안식장'이다.
그런데 이 '안식'은 '믿음'과 관련이 있고, 여기에는 '들음 (2절)'과 '순종 (11절)'이 함께 함을 말하는데, 사실 '들음'과 '순종'은 같은 것이다. 들어야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할 때 제대로 들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는데, 복음이 전해져도 그 말씀이 유익하게 되지 않는 이유는 '그 믿음 (단수)'이 '함께 섞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 즉 '그 믿음'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단지 '믿숩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에는 분명한 대상과 내용과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그리스도시고 내용은 우리의 안식이며 기준은 믿음이고 수혜자는 우리다.
3절은 이해가 쉽지 않은데, '세상이 놓아질 때 부터' 하나님의 '그 일들이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한다. 즉 세상의 창조는 이미 끝나고 따라서 4절 처럼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고 기록하지만,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의 부분의 시제는 완료가 아니라 아오리스트로 되어있다. 이것은 완료이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주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님의 창조 혹은 '만드심'이 6일에 걸쳐 완성되고 일곱째 날에 안식 즉 그치셨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제까지도 다시 계속 일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이 '안식 (혹은 그침)'에 '들어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중이다.
5절은 시 95:11을 인용한 것 같은데, 원어에는 '만일 (그들이) 들어간다면' 이라고 되어 있어서 결국 그 의미는 '못 들어갈 것이다'가 된다. 그래서 6절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이 못들어 갔음을 말하는데 이 복음은 원시 복음과 더불어 구약의 율법안에 언약된 것들이다. 그들이 못들어 간 이유는 '설득되지 않았기 ἀπείθεια' 때문인데, 이 단어는 '너희의 그 마음들을 완고하게 함 (7절)'과 관계가 있다. 들을 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봐도 다른 길이 없다.
8절은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하는데, 원어로 '여호수아'는 '예수'와 동일하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예수'가 '여호수아'이기 때문인데, '그 예수'가 아니기 때문에 구약의 여호수아를 의미한다. 즉 모세가 애굽 밖으로 인도했지만 결국 여호수아가 좋은 땅 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들어갔는데, 여호수아의 그러한 인도함은 진정한 안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7절 '어느 날' 즉 '다른 날을 말씀 (8절)'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9절은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라고 한다. 여기의 '안식'은 σαββατισμός로 신약 여기 단 한번 나오는 말이다. 즉 이제까지 '그침'이라는 헬라어는 결국 구약 '샤바트'의 온전한 의미임을 증거한다.
10절 원어에는 '이미'라는 말이 없고, 모든 동사는 아오리스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개정역이나 킹제임스 처럼 과거를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NIV에서 동사 원형을 쓴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그의 그 그침 안으로 그 들어가는 자는 그 하나님이 그 자기의 것으로부터와 같이 그의 그 일들로 부터 그치다'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라는 말씀이 따른다. 이것은 열심히 일을 하라는 의미이며, 단지 '행함' 자체가 아니라 '이는 누구든지 저 불설득의 (6절과 동일)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즉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힘쓰다'의 'σπουδάζω'는 '속히 하다, 부지런하다, 관심을 갖다, 간절한 마음으로 행하다' 등을 의미한다. '안식' 즉 '쉬는 것'을 위해서 부지런히 간절한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속히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원래 '안식'의 의미가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함을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완성되었다'라고 하시며 죽으셨지만, 주님의 몫이고, 그 구원 사역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하실 때까지 우리 안에서 지금도 계속된다. 그러한 구원 사역에 우리가 참여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목적과 대상은 바로 하나님의 집 혹은 하나님의 백성 (9절) 즉 우리이기 때문이다.
주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권속인 우리를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뒤로 물러가지 않고 주의 약속하신 그 온전하신 구원하심을 향해 우리가 간절히 힘쓰기 원합니다. 오늘도 일하시는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간구합니다. 이 역사하심에 우리 자신을 더욱 열심히 드리고 속히 드리도록 인도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