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도 성숙도 하나님의 은혜임 (히 6:1-12)

1절은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있는데, '버리고' 라는 번역 때문이다. 흠정역은 '떠나'로 번역했는데, '우리말성경'과 '공동번역개정판'은 '넘어서서' 등으로 번역했고, '가톨릭 성경'은 '놓아두고'라고 또 '새번역성경'은 '제쳐놓고서' 등으로 번역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라는 문구는 원어로 '그리스도의 말씀(λόγον)의 처음 (ἀρχῆς)'으로 되어 있는데, 즉 이것은 매우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결코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버리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ἀφίημι는 '떠나다, 놓아 두다, 허락하다' 등 여러 의미가 있는데, 주님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면서 '허락하라 (마 3:15)'고 하신 말씀에 같은 단어가 쓰였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건드리지 않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본'에 대해 설명하는데 ' 죽은 행실로부터 회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 침례에 대한 가르침 손들을 놓음 (즉 안수) 죽은 자들의 일어남 그리고 영원한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교리는 기본 중 기본으로 다시 추가로 설명하거나 바꿀 수 없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역시 '회개'부터 시작하는데, 주님을 믿기 위해서는 회개가 먼저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특히 '죽은 행실'로 부터의 회개라고 하는 것은 회개의 문자적 의미인 '생각을 바꿈'을 넘어서 이제까지 행하던 사망에 속한 행함들에 대해서도 돌아서는 것이다. 히 11:6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씀하는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한다. 침례 역시 성찬과 더불어 기독교 두가지 핵심 의식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손들을 놓음' 즉 '안수'가 여기에 있는 것인데, 보통 '안수'를 매우 고차원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히브리서 기자에게 있어서 이는 구약의 안수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인식을 포함한 매우 기초적인 교리다. 부활과 영원한 심판 역시 복음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구약과 연결되며 기본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들은 핵심 사항이면서 또 한면으로는 매우 초보적인 것이다. 즉 '기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다시 닦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마도 '성찬'은 이 '기본 사항'에서 빠진 것 같다. 성찬은 매우 깊은 것이다) 그래서 2절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고 하는데 (원어에서는 1절로 되어 있다) 이 '완전'은 앞 5장 14절 '장성한 자'와 연관된 말로 '성숙함'을 의미한다. '나아갈지니라'는 현재진행형 수동태 가정형 동사라서 3절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계시면 (가정형) (우리가) 이것을 할 것이다'로 연결된다. 우리가 성숙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우리 힘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그 은혜로 가능하다.

4-6절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데, 믿은 사람들도 소위 '지옥'갈 수 있는 것 처럼 말하는 것 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의 모든 동사는 아오리스트인데, 사실 성경에서 '구원'에 대한 동사가 많은 때 아오리스트 시제로 쓰였다. 이것은 누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 '완료형'이 아닌 이상 과연 누가 진정 구원받았는지는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고 구원의 '확신'은 있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보장'이란 있을 수 없다. 어느 때이건 '타락 παραπίπτω'하면 '회개 안으로 새롭게 할 수 없 (현재진행형)'는데 이러한 타락은 단지 '죄'를 짓는 개념이 아니라 '배교' 즉 주님의 공로를 완전히 무시하고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예수 믿어도 별거 없네'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인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재진행형)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현재진행형)'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7-8절은 마치 '배교'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행위'면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9절은 '사랑받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고 하며 위로한다. '확신하다'로 번역된 말은 πείθω로 '설득하다, 납득하다, 수긍하다, 여기다' 등에 가깝다. 히브리서 기자는 수신자들에 대해 확신은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0-12절에서 '너희들'의 행함에 대한 시제는 모두 현재진행형이 부각되는데 10절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 11절 '나타내어' 12절 '약속들을 상속 받는' 등이 현재진행형이다. 4-5절의 소위 '영적인' 것들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다. 특히 10절 '사랑'은 원어로 '아가페의 고생'으로 되어 있어서 믿음 때문에 성도들을 섬기는데 고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며 또한 감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실이 우리가 믿는 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아가페의 고생을 할 때도 감내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봅니다. 우리는 구원받음을 믿습니다. 그 어느 때고 주님을 배반하여 돌아서지 않게 하시고 이를 위해 오늘도 충만한 확신 안으로 더욱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